골목게장
2018.9.16.│지도
부산의 마지막은 게장으로 정했다. 부산은 게장이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하여튼 그렇게 정했다. 작전명은 게장 리벤지다. 일은 몇 년 전, 추석 전 서문시장에서 양념게장을 먹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때 먹은 게장은 딱히 맛있지는 않았지만 일단 음식이고 사 놓았기 때문에 다음 날 또 밥상에 올랐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역시 추석은 아직도 더운 날 중 하나였고, 냉장고가 아닌 베란다에 내놓은 양념게장 역시 예외 없이 상했다. 상한 양념게장에는 톡 쏘는 수상한 맛이 감돌았다. 그렇지만 그런 나의 의문은 '오히려 더 맛있는데'라는 연장자의 확신에 찬 발언 앞에 힘을 잃었다. 왜 강하게 주장을 못 했을까. 우리 집은 여태껏 게장이란 음식을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부터 나와 양념게장을 먹은 모든 이는 황금 같은 추석 연휴 내내 화장실 앞을 떠날 줄을 몰랐다. 지금 떠올려도 너무 끔찍한 기억이었고 여태껏 그렇게 고생한 기억 또한 없었다.
하지만 거하게 실패하니 되려 과연 맛난 게장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내가 먹은 게장이 혹 이미 살짝 상해있는 게장이란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가게에서 게장을 먹어보자는 취지의 '게장 리벤지'가 시작되었다. 동선 내에 모 TV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가게가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그런 프로를 완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평균은 하겠지 싶다. 그렇지만 맛 이전에 이 가게는 위생 면에서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 테이블에는 굳은 고춧가루가 붙어있는 데다 왠지 조금 끈적거리기까지 하다. 일단 들어왔으니 나가지도 못하고 음식을 다 먹긴 했는데 일단 깨끗하지 않으니 영 찝찝하다. 이런 곳의 찬은 과연 위생적일까? 그런 생각까지 미치는 건 결코 비약은 아닐 것이다.
사실 깨끗하지 않으니 가지 말라고만 적고 글을 끝내려고 했는데, 일단 먹기는 먹었으니 조금 적어본다. 일단 찬은 신선하진 않다. 중간에는 탕을 하나 놓아주는데, 거기 들어있는 게가 흐물흐물한 걸 보면 얼마나 오래 끓여냈는지 알 만하다. 궁금했던 게장은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살을 쭉 짜내서 먹었는데 별 감흥이 없다. 음식의 맛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다. 날것의 물컹한 느낌을 싫어하는 입맛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회도 못 먹는데, 날것인 게장 또한 다르지 않을 거다. 왜 그걸 이제 알았는지. 그래도 숙원을 풀었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이제 게장에 대한 환상을 깨끗이 버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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