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자연, 예술 (1)
2022.3.
폴라 미술관의 특별전을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전시만 보고 오기에 하코네는 너무 멀어 숙박하기로 했다. 하코네까지는 철도회사 오다큐의 특급열차인 로망스카를 탔다. 그렇지만 로망스카는 이름만 거창하지, 일반 열차를 타는 것과 비교해 시간이 극적으로 줄어들진 않는다. 단지 환승의 번거로움이 줄어드는 것과, 전망석이라고 해서 보통은 운전실이 있는 앞좌석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열차에 한정된다) 하지만 존재를 아는 것과 실천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 급하게 예약한다고 좌석을 고를 겨를도 없었다.
특급열차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타지 않았다. 뒤에 부부가 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코네까지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다 보니 그동안 눈을 좀 붙이고 싶었는데도, 여성분께서 내리기 직전까지 신나게 이야기해 대는 통에 그러질 못했다. 꾸벅꾸벅하다가 깨길 반복하니 짜증이 난다. 열차를 기다릴 때 앉았던 벤치에도 있었던 콘센트가 정작 열차에는 없어 휴대폰도 마음껏 만지지 못했다.
퀭한 상태로 하코네 유모토역에 내렸다. 특급열차에는 나이 드신 분만 타고 그 수도 많지 않았는데, 하코네 안쪽으로 가기 위해 등산 전철을 타려고 보니 연령을 불문하고 사람이 많다. 대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데도 이렇게 북적이는 걸 보니, 제대로 된 휴가철이라면 더욱 붐빌 듯하다.
그러다 보니 하코네 유모토역에서 갈아탄 교통수단인 등산 전철은 안내방송이 단순히 정차역을 알려주는 역할을 넘어 계절별 풍경이나 관광 포인트를 알려주는 관광 안내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등산 전철이란 이름만큼 노선에는 경사가 있어 스위스에서 유명하다는 스위치백을 3번 해서 올라가야 한다. 높은 경사를 지그재그식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극복한다는 설명은 퍽 신기하지만, 막상 그 열차를 바깥에서 보지 못하니 큰 감흥은 없다.
종착역인 고우라역에서 내렸다. 하코네 등산 전철의 각 역은 특이하게도 역 표지판에 해발고도가 표시돼 있다. 고우라역은 해발 541m. 등산 전철의 종점이자 로프웨이의 시발역이기도 해서 역 주변으로 작지만, 상점가가 형성돼 있다. 관광지가 다들 그렇듯이 영업시간은 짧다.
역 주변으로는 상점뿐 아니라 숙소도 적지 않은데, 대부분이 료칸이라 가격이 만만찮다. 애초에 온천을 목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온천을 즐기지도 않기 때문에 굳이 비싼 가격을 주고 료칸에 묵기는 아까웠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호텔 숙박만을 고수했는데, 숙박비가 부담되어 정말 오랜만에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것 이전에, 숙소에 가기까지가 너무나 힘들었다. 역 주변이 평탄하지 않아 오르막을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점심식사는 소운이라는 곳에서 했다. 주방을 ㄷ자로 둘러싼 좌석 사이를 단정한 적막이 채운다. 주문한 쇠심줄 오므라이스는 뛰어나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깔끔하고 또 정성들여 내어주신다는 점이 좋다. 6월을 기준으로 폐업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첫 목적지는 조각의 숲 미술관이다. 고우라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미술관은, 역 간 거리가 길지 않기 때문에 넉넉잡아 15분 걸어서 갈 수 있다. 미술관으로 가다 보니 골판지처럼 지그재그로 튀어나온 콘크리트에 나무가 기가 막히게 들어가 있다. 콘크리트에는 튀어나온 부분도 있고 들어간 부분도 있는데, 나무가 어떻게 자기가 자랄 곳을 잘 찾아 자라는지, 기특했다. 그렇지만 나무를 자세히 보니 철사가 꽂혀있었다. 연출된 것이었다. 잎을 보니 나무는 그래도 여전히 살아있었는데, 못 할 짓이다 싶었다.
미술관 작품의 대부분은 조각이었는데, 많은 수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경직된 분위기에서 작품을 감상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좋지만, 날씨에 전시 경험이 좌우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미술관 야외 부지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조각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작품도 있지만 알록달록하고 직관적이어서 사진 찍기 좋은 작품들도 많다. 완만한 내리막길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야외 쿠션을 비치해 놓아 지쳤을 때 쉬기도 좋다. 얼마 없는 실내 공간 중 하나는 어린이만을 위한 놀이공간으로 할애되었는데, 꽤 높이 올라갈 수 있어 어린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몇 없는 실내 공간 중 하나인 피카소관. 그렇지만 피카소의 유명세와 함께 열거되는 작품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피카소가 도자기도 빚었다는 건, 여기가 아니면 평생 몰랐을 사실이다.
놀랍게도 전망대도 있다. 바깥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있어 안에서 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황홀한데, 하필 계단도 나선형이라 어질어질함은 극에 달한다. 계단에는 어린이를 위한 발자국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워낙 폭이 좁은데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약자 편의성이 떨어진다.
시기상으로는 벌써 봄이지만, 해발 500m 정도 되니 여전히 춥다. 씩씩하게 핀 벚꽃과 둘이 아주 신난 토끼까지, 속속들이 다 보고 미술관을 나왔다.
저녁은 타무라 긴카츠테이에서 먹었다. 가게는 고우라역 근처로, 근방에 음식점이 그리 많지 않은 탓에 사람으로 북적여 거의 1시간을 기다렸다. 내부엔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좌석이 따로 없어서, 자리가 남더라도 무조건 탁자를 하나씩 배정한다. 결과 사람은 더욱 더디게 빠졌다.
주문한 건 두부카츠니(豆腐かつ煮) 정식으로, 문자 그대로 읽으면 두부 돈가스 끓임을 곁들인 정식이 된다. 그렇지만 실제 받아 든 음식은 이름만 다를 뿐 밥을 따로 뺀 가츠동과 완전히 같다. 섞어국밥과 따로국밥의 관계와 비슷하다.
두부 돈가스는 이름과는 달리 온전히 두부만으로 된 음식은 아니었다. 샌드위치처럼 두부 생강으로 밑간을 한 돼지고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특히 주의해야 할 듯하다. 한편, 일본의 두부는 종류가 많아도 대부분이 우리나라의 연두부 같은 식감이라, 도대체 이런 흐물흐물한 두부를 어떻게 무너트리지도 않고 완벽하게 돈가스로 만드는지 먹으면서 감탄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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