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자연, 예술 (3)
2022.3.
양은 부족하지만서도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 아침 일찍 열어줘서 고마웠던 카페 '커피 캠프'는 알고 보니 숙소였던 '게스트하우스 텐트'를 운영하는 곳과 같았다. 건물은 모든 게 낡은 하코네에서 홀로 현대적인 느낌을 풍기는데, 농협 건물을 재단장한 것이라고 한다. [1]
아침으로 먹은 닭고기 오픈 샌드위치는 맛은 있었지만, 재료가 혹여 빵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먹어야 했다. 그러면 다른 걸 시켰으면 될 문제이긴 하지만, 나머지는 핫도그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번 여정의 핵심인 폴라 미술관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가는 길은 부산 이상으로 커브와 경사가 많았다. 산속이라 나무도 많았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면 더 좋은 풍경을 볼 수 있겠다 싶다.
첫날에 간 조각의 숲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폴라 미술관 또한 지하에 전시장이 있다. 그렇지만 조각의 숲 미술관의 '지하'는 매표소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일 뿐, 전시실 또한 지상이다. 이와 달리 폴라 미술관은 말 그대로 지하에 전시장이 있다. 지하로 들어가는 특이한 구조는 주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라 한다.
기획전은 '로니 혼'이라는 작가의 개인전이었다. 작가는 하나의 예술 형태에만 머물러 작업하지 않는지 작품이 회화, 사진, 영상, 조각 등으로 다양했다. 작품에 대한 설명도 충실하나, 장황한 설명은 초보자의 이해를 돕지는 못했다.
전시를 보고 난 다음에는 바깥 공기를 마시러 미술관에 딸린 야외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에는 나무가 반듯하게 깔려 있었지만, 길이가 어정쩡하게 길어 항상 같은 발로만 계단을 오르게 된다.
환경 파괴를 최소화한다는 폴라미술관의 설계 목적대로 주변 환경은 좋게 말하면 자연에 가까운, 나쁘게 말하면 정비가 덜 되어 있는 듯한 상태였다. 노송나무는 높이 솟아있었고, 나무 열매는 아담하게 떨어져 있다. 아무렇게나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는 버려진 듯 아닌 듯 요정처럼 작은 조각들이 나타난다. 아침엔 이슬비가 내렸지만, 점차 해가 나기 시작해 촉촉한 공기와 기분 좋은 햇살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미술관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다. 어차피 식당이라고는 미술관 내의 레스토랑과 카페가 전부다. 관내 레스토랑에서는 기획전 작가 로니 혼에게 영감을 준 아이슬란드를 형상화하여 '아이슬란드 여행'(3200엔)이라는 코스요리를 팔아 그걸 먹기로 했다. 여행 내내 흐렸던 날씨가 개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데 창가 자리까지 배정받았다.
식전 요리로는 딜, 파슬리 등의 허브를 곁들인 큰징거미새우찜과 북쪽분홍새우로 만든 수프가 나왔다.
곧이어 나온 빵에는 버터라기엔 의심스러운 이름의 휩 버터가 함께 나왔다. 빵 대신 밥을 고를 수도 있다.
주요리는 어린 양의 넓적다리 살 구이인데, 곁들임으로 나오는 음식들이 고기를 중심으로 배치되기보다는, 일정 간격으로 나열돼있다. 음식이 서로 가깝지 않아 관계성은 떨어져 보이고 간격 사이로 보이는 접시는 시리도록 희다. 이 또한 아이슬란드를 형상화한 것이라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곁들임으로 나오는 음식 중에는 삶은 강낭콩이 나오는데, 통조림의 그것과 아주 쏙 빼닮았지만, 맛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토마토는 쭈글쭈글한 모양과는 달리 생육환경을 연상케 하는 가볍고 화사한 맛이다. 한편 고기는 다소 짜게 간이 되었다.
디저트로는 블루베리 콩포트(과일을 설탕에 조려 만든 프랑스 디저트로 우리나라의 잼과 유사하다[2])를 곁들인 마스카르포네 치즈와 크림치즈를 사용한 케이크가 나왔다. 곁들임으로는 사워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으로, 아래에 크럼블이 깔려 있다.
식후 음료로는 홍차를 선택했다. 잎을 우려내 마음에 든다.
식사 후에는 소장전을 보았다. 그중 하나는 모네 전시였는데, 작은 규모이지만서도 전시실을 채울 정도로 모네 작품을 소장하고 있단 사실에 놀랐다. 인터넷으로만 접했던 모네의 그림은 색감도 붓질도 부드러웠던 것 같은데, 이름만 들어본 루앙 대성당은 생각과는 달리 색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붓질도 꽤 거칠었다.
라파엘 콜랭과 이에 영향을 받은 일본 작가 쿠로다 세이키의 소장전도 있었는데, 나부상도 적지 않았다. 나와 대상을 가르는 시선이 드러나는 나부상은, 시대를 감안하고서라도 타자화라는 권력이 화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해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
전시를 본 후에는 버스를 타고 하코네 유모토역으로 갔다. 돌아갈 때쯤에는 완전히 해가 나와 졸기 딱 좋았는데,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버스는 하코네를 헤매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다. 원래라면 역에서 유바(두부껍질) 덮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다 됐고 빨리 신주쿠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실 신주쿠도 사람은 많지만, 하코네는 관광지라 들뜬 사람이 많아 훨씬 시끄러웠다. 도대체 일본 사람이 조용하다는 선입견이 어디서부터 퍼졌는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물가도 비싸고, 날씨도 도와주지 않아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하코네에 또 갈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간다면 그때야말로 날씨에 고생하지 않도록 여름과 가을 사이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끝)
출처
[1] COFFEE CAMP HAKONE, 2022.12.30., https://coffeecamp-hakone.com/
[2] "콩포트", 두산백과, 2023.1.7.,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0942&docId=1150655&categoryId=32109
'눈에 담기 > 다른 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 도쿄) 벚꽃 아래를 걷다 (2) 스미다강 (0) | 2023.10.07 |
---|---|
(일본 - 도쿄) 벚꽃 아래를 걷다 (1) 메구로강 (0) | 2023.06.05 |
(일본 - 카나가와) 온천, 자연, 예술 (2) (0) | 2022.12.29 |
(일본 - 카나가와) 온천, 자연, 예술 (1) (0) | 2022.12.22 |
(일본 - 도쿄) 니혼바시 다카시마야 '메종 에 오브제 파리' 전, 그리고 (0) | 2022.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