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17. 12. 3. 20:35
작성자
달콤 씁쓸

계획 없는 당일치기

2017.12.


 우연히 간사이행 특가 표를 잡게 되었는데, 취소할까 하다 이때 아니면 언제 단풍철에 가보냐 싶어서 가게 되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를 통과하니 10시 10분이었다. 간사이공항-교토 특급 열차(하루카)가 10시 44분쯤에 있었다는 걸 떠올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JR 창구로 갔는데 어째 저번에 왔을 때보다 더 복잡해졌다. 창구의 수도 늘렸고, 그 창구 중 3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외국인이 많이 찾는 패스 전용 창구로 돌렸는데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했다. 창구는 임시로 만든 것인지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다. 제발 제대로 확장하든지 해 줬으면 좋겠다. 정말 여기는 입국심사도 그렇지만 패스를 받는 것도 너무 힘들다. 1분 차이로 열차를 놓치니 더 화났던 것 같다. 그래도 패스가 자동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게 된 건 다행이었다. 일일이 역무원에게 보여주고 통과하는 것 또한 고역이었던지라.

 44분 열차를 놓친 탓에 예정보다 30분이나 늦게 교토에 도착했다. 일정이랄 것도 거의 없긴 했지만 그래도 늦은 건 화난다. 

 교토에만 집중해서 조금 더 멀리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오늘은 굳이 그렇게 힘들게 여행하고 싶지도 않고 단풍도 이미 절정이 지난 상태라 해서 도보로도 갈 수 있는 도지로 갔다. 도지 근처에 학교가 있는지 하교하는 고등학생 무리와 엇갈렸다. 일본은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나 보다. 

 

* 도지  HP  지도

 따가운 햇빛에 절로 더워진다. 한국은 완전히 겨울인데 여긴 12월임에도 여전히 가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얼마 전까지 볼 수 있었던 풍경을 여기서 다시 보다니 마치 과거로 되돌아간 것 같다. 날씨는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역광이라 사진찍기에는 좋지 않았다. 액정도 잘 안 보여서 거의 감으로 찍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이 사진기를 들이대는 곳에 살짝 휴대폰을 들이댔다. 역시 남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는 곳에는 이유가 있다.

 같은 풍경을 미러리스로도 찍어봤다. 휴대폰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역시 카메라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 일본에 자주 왔다면 새삼스레 놀랄 것도 없겠지만 -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여기가 끝이다. 사진을 뽑아낼 수 있는 장소 또한 위의 두 곳뿐이라는 말이 된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800엔을 내야 한다. 하지만 언뜻 보니 단풍이 좀 떨어진 상태이고 차라리 우리나라 궁을 하나 더 돌겠다 싶어 그냥 여기서 끝냈다. 차라리 밤이면 라이트업이라도 볼 수 있었을 거다. 물론 요금은 200엔이 더 추가되지만. 오사카로 돌아가기 전에 울타리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잠시 보고 간다. 

 신쾌속 열차를 타고 오사카로 간다. 주말인 데다가 낮이라 그런지 사람은 빼곡하다. 앉을 자리 하나 없다. 시간은 오죽 긴가. 그렇지만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름답다. 사진은 타카츠키역에 정차하기 전의 것인데, 타카츠키 역의 스크린도어가 대구 2호선의 종점인 문양역과 마찬가지로 로프형 스크린도어여서 왠지 반가웠다. 

 

* 다시차즈케 엔  HP  지도

구운 명란젓과 다카나 다시차즈케(680엔)

 오사카역에 내렸다. 사람이 너무 많다. 역시 사람이 많은 건 지친다.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은 다 끝마친 후에 쉬어야 한다. 일단 집에 두고 온 가족을 위해 손수건이라도 하나 샀다. (다행히 마음에 들어 했다)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카페를 찾았는데 알지 못하는 동네이다 보니 카페 찾는 것도 힘들다. 여태까지 일본을 몇 번이나 오긴 했지만, 딱히 음식점을 찾아가진 않았다 보니 여기엔 전혀 깜깜이다. 눈에 띄는 곳은 죄다 만석이었다. 그래서 지하도를 헤맨 끝에 적당한 음식점을 발견했다. 오차즈케라 하니 낯설지만 쉽게 말해 그냥 맑은 육수에 고명을 얹어 밥 말아 먹는 거로 생각하면 된다.

 음식은 자판기에서 음식을 고른 후에 나오는 식권을 주방에 갖다주면 되지만, 옆에 계신 직원분께서 식권이 자판기에서 나오는 즉시 잽싸게 식권을 가져가신다. 그리고서는 밥의 양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데, 양을 늘려도 추가금이 없으니 배가 고프면 사양 말고 밥을 늘리는 게 좋다. 사실 양이 적다.

 내가 시킨 건 구운 명란젓과 다카나 다시차즈케였다. 일본의 12월 초순은 그렇게 춥지는 않았지만, 아니 되려 늦가을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따뜻한 국물을 부으니 몸속부터 따뜻해져서 좋다. 명란젓은 여전히 짜지만, 나물이 그럭저럭 맛있다. 그렇지만 밥은 맛있진 않다. 윤기도 찰기도 부족하다. 

 음식은 오챠즈케만으로 끝나지 않고 찬이 세 개 붙는다. 맨 안쪽에 있는 건 두부인데, 참깨(?)소스 덕분에 고소하다. 그리고 맨 앞에 있는 건 참치와 무인 것 같았다. 무는 형태만 무였지 맛은 참치 통조림에 있는 국물이 무에 스며든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찬은 밥그릇에 가려져 있지만, 나물도 하나 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향이 아니라 한입밖에 먹지 않았다.

 그렇지만 좌석이 대부분 카운터석인 데다가, 그 외에는 2인용 탁자가 3개 정도 있을 뿐이라 여러 명이 갈 만한 곳은 아니었다.

 

* de tout PAINDUCE  HP  지도

 밥을 먹고 나온 뒤에 뭘 할까 생각하며 지하도를 도는데 빵이 보였다. 빵을 좋아하는데 생각해보니 일본에서 빵을 많이 사 먹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싶어 과감히 빵집에 들어갔다. 손에 든 짐이 늘어나는 게 걱정이지만 합치면 되니까. 

 가게는 조금 좁았는데 그 좁은 가게의 라인업 반 이상이 식사류였다. 그 외에도 초콜릿이나 기타 부재료가 들어간 빵이 있긴 했지만, 그런 빵은 크게 좋아하지 않아서 우유빵으로만 골랐다. 그렇게 고른 빵 중, 큰 덩어리를 1/4이나 1/2로 잘라서 파는 우유빵이 가장 맛있었다. 1/4개에 250엔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속은 적당히 씹는 맛이 있는데 겉은 구수했다.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공항으로 갔다. 린쿠타운을 지나는데 열차 오른편은 이미 해가 져서 어둑어둑하고, 왼편은 아직 노을이 조금 남아있어 진홍빛이 살짝 남아있는데 그조차도 아름다웠다. 낯섦이 사소함을 덧칠해준다. 

 개찰구를 통과해 공항으로 가는 길목에 사진과 같은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구형 전구는 시시각각 색이 변해서 넋 놓고 보기 딱 좋다. 테마가 오리가미인지 종이학 조명도 있었다. 이대로 국내선 층으로 가면 오리가미를 테마로 한 트리와 작은 전시장이 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을뿐더러 트리도 썩 예쁘지 않았다.

 

* 가마쿠라 파스타  HP  지도

그릴 치킨이 들어간 푸타네스카(1285엔)

 시간이 조금 남아서 밥을 먹기로 했다. 마침 파스타 가게가 있어서 들어갔다. 가게는 칸막이 형식의 4인 좌석이 죽 늘어서 있고 전체적으로 어슴푸레한 조명에 천정형 직접조명이 테이블마다 있다. 가게 안이 한산해서 그런지 좌석도 원하는 곳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테이블이 썩 깨끗하지 않았다. 잘 닦지 않는 듯했다. 거기다 종업원은 두 명이 있는데 주방 근처에서 시종일관 잡담만 하고 있어서 주문하려고 부르는 것도 힘들었다. 음식은 괜찮았지만, 다시 오고 싶지는 않았다. 

 그릴 치킨이 들어간 푸타네스카는 푸타네스카치고는 전혀 맵지 않다. 소스는 다소 묽지만, 생면을 사용해서 그런지 면은 쫄깃쫄깃하고 치킨도 적당히 기름지면서 탄력 있다. 하지만 부재료는 올리브와 치킨 외에는 거의 없다.

 마지막을 파스타로 끝내서 그런지 군것질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냥 빨리 출국심사를 받고 선심용 과자를 몇 개 사는 거로 당일치기를 마무리했다. 기분전환치고는 나쁘진 않은 하루였다. 아! 그런데 비행기를 타기까지의 무료한 시간 동안 오늘 하루를 곱씹다 보니 굳이 오랜 시간을 들여서까지 창구에서 패스를 살 필요는 없었다는 걸 깨닫고 조금 우울해졌다. 사전에 철저히 조사하지 못한 내 탓이겠거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