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하바라 (1)
2018.5.
친구가 도쿄에서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했다고 해서 친구도 보러 갈 겸 겸사겸사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게 1월이었다.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두 장을 끊었었는데 시간도 빠르게 벌써 첫 번째로 예약한 날짜가 다가왔다.
이번에는 에어부산을 이용했다. 에어부산은 좌석 간격도 넓은데다 부가서비스(위탁수하물은 20kg, 기내식 제공, 사전 좌석 지정)가 알차 가장 좋아하는 항공사이다. 출발 시각만 보자면 압도적이었던 티웨이항공을 이용하지 않고 굳이 에어부산을 선택한 이유이다. 물론 가격은 여타 저가 항공사보다는 비싸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옛말일 뿐 점점 부가서비스의 폭을 줄이고 있어서 에어부산의 장점은 없어지고 있다.
기내식은 햄 치즈 치아바타 샌드위치인데, 이 누렇고 황폐해 보이는 치아바타에 햄 치즈가 납작하게 들어있다. 생각보다 속이 뜨거워서 먹을 때 조심해야 한다. 아무거나 잘 먹기 때문에 물론 맛있게 먹었다. 일단 햄, 치즈, 빵이 있으면 일단 기본은 하니까 말이다.
어느 나라에 가도 제일 걱정하게 되는 건 입국심사인데, 도착하는 비행기의 시각, 그리고 동시간대에 도착하는 비행기의 대수, 성수기의 여부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언제 공항을 탈출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도 토요일이고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있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입국심사장에 아무도 없었고 캐리어도 기내용으로 갖고 탔기 때문에 놀랍게도 비행기에 적힌 예상 도착 시각에 심사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나기 전에 우선 숙소부터 들러야 했는데, 여전히 나리타공항을 탈출하는 표를 끊는 건 너무 어렵다. 이번엔 스스로 표를 끊어보겠답시고 자동판매기 앞에 섰는데 역시나 등에는 식은땀만 흘리며 시간만 낭비한 후 카운터에서 표를 끊었다. 조금만 더 질질 끌었으면 기차를 놓칠 뻔했다. 도대체가 공항으로 가는 표를 끊는 건 쉬운데 공항에서 나가는 표를 끊기가 안 된다. 쓰는 김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려고 하는데 정보의 홍수에 원하는 정보를 찾기가 힘들다. 과연 다음에는 혼자서 표를 끊을 수 있을지...
숙소에 짐을 맡기러 걸어가는데 수상한 한국음식점이 있었다. 건물 벽면에 방콕 마사지 업체 광고가 붙어있는 것도 해괴하다.
* 우에노
어머니께서 지난번보다 많은 양의 심부름을 부탁하셨다. 마침 숙소와도, 목적지인 아키하바라와도 가까운 우에노 근처의 아메요코 시장에 드럭스토어가 많았다. 수고스럽지만, 친구에게 우에노역에서 보자고 했다. 마땅한 집합 장소가 없어서, 그나마 많이 언급되는 JR우에노역의 '날개상(翼の像)'으로 했다. 찾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 데다 로밍도 와이파이도 없어 걱정했지만, 숙소 근처의 고덴마초 역에서 히비야선을 타고 환승 통로로 올라오니 헤맬 시간도 없이 금방 상을 찾았다. 다행히 친구도 내가 올라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했던 장소에 왔다. 정말 입국심사도 그렇고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그러고 보니 히비야선의 우에노역이 참 예뻤는데 빨리 간답시고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것이 지금에서야 조금 후회된다.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외국에 떠나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체감상으로는 억겁의 시간이 지난 것 같다. 몇 달 만에 한국어로 말해본다는 친구의 말을 시작으로 신나게 이야기하며 도보로 15분 정도 되는 거리를 철로를 따라 걸어간다. 아키하바라에 완전히 도착하기 전에 일단 점심부터 먹기로 한다. 소위 '맛집'이란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음식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친구가 나를 위해 여러 가지 음식점을 알려준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개중에 마음이 가는 대로 브라우니라는 카레 집으로 가자고 했다.
* 브라우니 지도
가게 이름은 디저트지만 카레 집이다. 브라우니는 우에노에서 대로변을 따라 아키하바라로 내려가는 중 코코이치방야가 있는 사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꺾으면 나온다. 친구를 만났던 것처럼 어렵지 않게 가게를 찾아갔는데 줄이 있어서 당황했다. 최후미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왼쪽에 붙어있는 라멘집 줄이라고 한다. 안심하며 가게에 들어간다. 가게는 좁으며 카운터석밖에 없다. 대강 훑으니 8~10명 정도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을 기다리며 가게를 둘러보니 예전부터 이어져 온 가게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손을 닦기 위해 걸려있는 건지 자기 앞 좁은 테이블을 닦으라는 건지 의문인 행주(와 비슷한 무엇)가 있었지만, 당연히 눈길도 안 줬고 물티슈로 손을 훔쳤다. 한쪽에는 이쑤시개와 향신료도 있었지만 원래 양념을 잘 곁들이지 않고 음식을 먹기 때문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만 보고 넘어간다.
이 가게는 모든 음식에 쇠심줄을 이용한 것이 특징인데, 이걸로 카레나 조림 등을 만들어 카레라이스, 하야시 라이스, 칠리 라이스 등을 판다. 단 14시 이전에는 메뉴가 다소 한정적이다. 나와 친구는 가게에서 가장 많이 주문한다는 조합인 쇠심줄 카레라이스에 계란을 추가했다. 카운터석이라 주인 할아버지께서 요리하시는 모습도 잘 보이는데, 냄비에서 국자로 카레를 퍼서 끓이는 한편 기름을 함빡 둘러 계란을 굽는다. 프라이팬은 기름을 많이 먹은 듯한 모습이다.
밥에 야들야들한 계란을 얹고, 카레를 부은 뒤 파를 살짝 올린 쇠심줄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음식은 어느 정도까지는 기름을 많이 쓸수록 더욱 맛있어지는데, 계란도 그랬다. 집에서보다 기름을 많이 쓴 계란은 반숙 상태로 훨씬 부드럽고 맛있다. 쌀은 니가타산 고시이부키라는 품종을 쓴다고 하는데 밥이 차지고 맛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제일 중요한 카레는 푹 삶은 듯한 고기가 중간중간 씹히고, 물렁뼈와 같은 것도 있다. 맛은 깊으나 다소 짠 편이다. 그렇지만 입맛에 맞지 않아서 그런지 신나게 먹지는 못했다. 일본에 많이 왔지만 음식을 먹고 탈이 안 난 적이 드문데, 이 음식도 역시 그랬다. 나와 천성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다.
* 아키하바라
친구가 아니라면 이국적인 풍경 감상을 목적으로 여행하는 나는 전자상가로 유명한 아키하바라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요새 유행하는 건 아무래도 캐릭터가 노래에 맞춰 움직이는 완구인 것 같다. 피카츄만이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가게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작년에 닌텐도에서 발매된 게임기인 닌텐도 스위치의 시연대이다. 마음에 드는 타이틀이 없어서 사지는 않았지만 어떤 기계인지는 궁금해서 한번 만져보았다. 하지만 화면에 나오는 키를 눌렀는데도 조작이 안 되어서 손을 놓았다.
이외에도 다양한 가게를 둘러보거나, 거리로 나와 건물을 시원하게 뒤덮은 광고판이나 가두TV 사이를 걸었다. 모든 게 신기하다. 일본에 온 김에 팔리지 않던 물건도 북오프에서 팔았는데, 이전에 매입한 가격의 반도 쳐 주지 않아 속이 쓰라렸다.
아무리 걷는 걸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다행히도 날씨는 흐려서 덥지는 않았지만 새로 산 전자기기와 친구에게 넘겨줄 갖가지 우리나라 음식을 나눠 들고 걸으니 서서히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기 시작한다. 미리 알아봐 둔 핫케이크 카페에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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