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18. 6. 13. 19:46
작성자
달콤 씁쓸

아키하바라 (2)

2018.5.


* 플라잉 스코트먼 아키하바라점 HP  지도

 카페는 대로변에서 한 칸 안쪽으로 들어온 건물에 있다. 가게로 올라가니 역시나 줄이 있길래 맨 뒤에 섰다. 그런데 친구가 잠시 있으라더니 문 앞 대기표에 이름을 적는다. 나 혼자라면 이름도 안 적고 하염없이 기다릴 뻔했다. 하마터면 실컷 기다리고 뒤에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가게 둘 뻔했다.

(왼쪽에서부터) 티라미수 핫케이크(850엔), 망고 주스 아이스(400엔)

 대기를 뚫고 들어온 가게는 생각보다 좁았지만, 벽이나 기둥 쪽을 거울로 발라놓아 실내가 한결 넓어 보인다. 분위기는 세련되기보다는 목재로 발린 다방 같은 분위기이다. 커피명가 본점이라고 하면 이해하기가 조금 쉬울지도 모르겠다. 좌석은 당연하게도 다 차 있었으며 우리는 중간에 빈 8인석으로 안내받았다. 하필 비게 된 좌석이 8인석이라니. 다른 사람과 합석하는 건 아무래도 불편한데 말이다. 아무래도 이 좌석에서 계속 사람이 빠지는 것 같다. 창가 쪽에 즐겁게 앉아있는 사람들을 야속하게 쳐다본다.

 하지만 일단 들어왔으니 메뉴를 시킨다. 친구가 시킨 음료는 말차 플로트였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음료는 금방 나왔지만, 핫케이크는 역시나 오래 걸린다. 마냥 기다리려니 지쳐서 우리 옆에 앉은 아저씨들을 보았는데, 핫케이크의 양이 많은데도 각자 핫케이크를 주문하셨다. (나중에 나올 때 보니 남기시지도 않았다)

 기다리는 게 지칠 때쯤 핫케이크가 나온다. 커피시럽에 적신 핫케이크를 2단으로 쌓아 올려 티라미수 소스를 끼얹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올린다. 마감으로 코코아 파우더를 뿌린다. 하지만 일단 먹으려면 2단 핫케이크를 해체해야 하는데 당연히 몰골은 처참하게 되었고, 그 참상은 이루 사진으로 남길 수가 없었다. 맛은 있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 줄을 설 정도는 아니다. 먹으면서 친구가 말하기를 - 입맛의 차이도 있지만 - 음료가 별로라고 한다. 가까이 있으면 찾아가 볼 수도 있겠지만 기다리면서까지 먹을 가치는 없는 것 같다.

 

* 고덴마초 → 닌교초

 문제는 저녁에 어디 갈까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던 중 일어났다. 로밍이나 와이파이는 신청하지 않았지만, 지도를 보거나 사진을 찍다 보니 휴대폰 배터리가 쉽게 닳아버린 것이다. 작년에 산 휴대폰이라 배터리가 금방 바닥을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힘없는 30대의 숫자는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래, 지금부터 배터리는 아껴 쓰고 숙소에 가면 바로 충전부터 하자. 그런데 생각해보니 짐을 쌀 때 변환 어댑터(속칭 돼지코)를 넣지 않은 것 같다. 당장 숙소에 가서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기껏 친구랑 만났는데 숙소에 가는 건 아까우니, 근처에서 돼지코를 사는 게 낫겠다 싶어 함께 상가에 갔다. 그런데 돼지코는 생각보다 훨씬 비쌌고 헛돈을 쓰려니 속이 쓰리다.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일본에 자주 가는 걸 대비해 캐리어를 정리할 때도 빼놓지 않는 물품이 몇 있는데, 돼지코도 그런 것 같은 자기 암시가 갑자기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확신은 없는데 믿고 싶다. 그렇지만 그걸 위해서도 일단은 숙소에 돌아가야 했다. 나의 이 불안을 읽은 탓일까, 정말 고맙게도 친구가 숙소에 일단 들르자고 한다.

 과거의 나는 정말 철두철미했다. 깜박 잊고 돼지코를 안 챙길 때를 대비해 비상 돼지코가 캐리어 앞쪽 주머니에 수줍게 들어있었다. 속으로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친구에게 돌아갔다. 그제야 나는 안심하고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핫케이크를 먹을 때까지만 해도 불렀던 배가 어느새 다시 꺼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목적은 음식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일본의 밤은 우리보다는 짧았고 그렇게 우리는 번화가를 향해 하염없이 걸었다. 새삼 우리나라의 불야성 같은 가게들이 생각난다. 그게 다 근로 복지를 무시한 결과라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데 친구랑 헤어지기 아쉬웠던 당시는 그랬다.

 

* 맥도날드 닌교초점  HP  지도

 열려 있는 가게를 찾아 무작정 걷다 보니 닌교초라는 곳으로 왔다. 곳곳에 가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검증된 글로벌 체인인 맥도날드에 갔다. 우리나라에서도 거리 때문에 잘 안 가는 맥도날드를 일본에서 가게 되었다. 마침 친구가 쿠폰을 가지고 있어서 할인도 받았다. 음료는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쿠우로 했다.

(앞에서부터) 에비휘레오 세트, 맥리브 세트(각 640엔)

 당시 맥도날드에선 레귤러 쟁탈 오디션이란 이벤트를 하고 있었는데, 후보 중 하나인 맥리브라는 메뉴는 7년 만에 부활했다고 한다. 이벤트 내용은 읽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름을 보았을 때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메뉴가 정규메뉴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투표는 먹어서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한 표를 넣고자 한 건 아니었고 단순히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메뉴를 골랐다. 포장지를 보니 맥리브는 스모키한 BBQ 소스에 육즙 가득한 패티가 특징인 것 같은데 그런 건 다 차치하고 BBQ 소스라기보다는 일본화된 간장소스 맛이 많이 났다. 어째 오늘은 고르는 것마다 실패는 하지 않았지만, 썩 마음에 차지도 않는 것뿐이다. 

 한편 가게는 당황스럽게도 공부하거나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선 스타벅스에서나 볼 법한 분위기이다. 분위기에 먹힌 우리 또한 (본래도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더욱 조심스럽게 말하게 되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가족 손님도 합세해서 조금 더 편해졌다. 

 

* CITAN  HP  지도

 친구와 역에서 헤어지고 숙소로 걸어간다. 이번에 예약한 숙소는 CITAN이다. CITAN은 도쿄에 있는 toco 게스트하우스의 자매 점이다. 당연히 나도 처음에는 toco를 이용하려고 생각했지만, 만실이라 어쩔 수 없이 CITAN을 고르게 되었다. 여기도 물론 위치는 나쁘지 않다. 도쿄역을 이용한다면 여기가 더 편리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닌교초다. 인적이 드물다.

 10분 정도 걸으니 체크인할 때 보았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바로 숙소에 들어가진 않고 슈퍼마켓에 들른다. 하나 남은 어머니의 심부름 목록을 해치우기 위한 것도 있다. 4층이나 되는 건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부탁받은 물건은 없다. 대신 희한한 음료를 발견했다. 투명한 카페라테라니! 척 봐도 이상했지만, 이상하게도 해외에만 오면 돈을 낭비하고 싶어진다. 하나 샀다. 늦었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메이지의 '더 초콜릿'도 산다.

 숙소는 신나는 음악으로 들썩거렸다. CITAN은 최근 게스트하우스의 경향인 것 같은 카페 겸 호스텔의 형식을 취하는데, 아침에는 커피를 팔지만, 밤에는 지하에서 술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특히 주말에는 지하에서 DJ 파티를 한다고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다행히 숙소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니 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숙소는 6인실의 기숙사형이었고 좁은 공간에 2층 침대가 3개 채워져 있다. 딱 가격만큼이다. 시설은 청결하니 다행이었다. 서둘러 요를 깔고 잘 준비를 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옆 침대 1층에서 누가 전화를 한다. 정말 배려 없다고 생각하면서 짐을 정리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이다. 전화할 거면 밑에 가서 하지 왜 굳이 남들 자는 곳에서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엔 아까운 시간이긴 하지만 눕는다. 달리 할 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