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다방
2016.10.29.│지도
솔직히 말해 대구는 관광자원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러나 최근 대구는 그 없는 관광자원을 억지로 억지로 긁어내어 근대골목투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시키고, 그것이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구사람으로서도 이제 다른 지역 사람에게 자랑하고 또 대구에 놀러 오라고 할 만한 거리가 생겨서 기쁘다.
근대골목투어의 개설과 함께 코스 일대를 정비했는지, 유명 장소 근처에 가면 어김없이 안내판이 붙어있다. 미도다방은 골목길에 있어서 과연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근처에만 가면 안내판이 등장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골목길이라기엔 조금 넓은 길을 쭉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미도다방을 만날 수가 있다. 간판 오른편에는 한자도 있는데 풀이하면 美都茶房, 즉 아름다운 도시의 찻집이라는 뜻이 된다.
사실 다방이란 단어는 현대에 와서는 같은 기능을 하는 카페라는 단어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그렇지만 다방은 카페란 단어를 쓸 때와는 엄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아련하면서도 빛바랜, 어슴푸레한 조명과 같은 느낌을 준다. 다방이란 단어가 주는 뚜렷하지 않은 이미지는 현대의 다방의 입지를 나타내는 듯하다. 미도다방은 현대에 와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다방 중 하나로, 지금은 거의 사라진, 어르신들 시대의 찻집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곳이다.
입구를 들어서니 어느 정도 예상했던 풍경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벽면을 메운 서예와 기타 빛바랜 예술작품들. 그리고 수족관. 근대골목을 통해 방문한 사람도 있을 법도 하지만, 내가 방문한 시간대에는 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은 없었다. 대신 다수의 어르신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카페에서 젊은이들이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르신들도 갈색의 소파에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름대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미도다방은 여전히 어르신들의 아지트였다.
아무래도 카페와는 달리 직접 가서 주문해야 하는 것 같아서 가게 앞 언저리를 기웃기웃거리니, 차를 만드는 곳으로 보이는 곳에 계신 분이 뭐 시킬 거냐고 다소 퉁명스럽게 묻는다. 팥빙수가 되냐고 물어보니 지금은 안 한다고 해서, 추천해주신 강황꿀차와 쌍화차를 시켰다.
자리에 앉으면 어르신들의 과자인 전병(뒤)이 기본으로 나온다. 차는 강황꿀차.
강황꿀차나 쌍화차를 추천하셔서, 아무 생각 없이 강황꿀차를 시켰는데 대실패다. 강황이라면 카레의 원료인데 당연히 원재료는 엄청나게 맛이 없다. 물에 강황을 태워 꿀을 넣어 섞은 다음 잣을 띄워도 맛이 없었다. 돈이 아까워 미치는 줄 알았다. 4천원을 땅바닥에 버리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억지로 마셨다. 솔직히 한약보다 마시기 더 힘들었다. 강황과 물이 잘 섞이지는 않는지 시간이 지나면 강황이 가라앉는다.
쌍화차. 소문의 계란 노른자는 들어가 있지 않다. 흥건히 띄워져 있는 잣이 인상적이다.
차를 마시면서 가게를 훑어보았는데, 차를 만드는 곳이 다방과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 점이 특이했다. 차를 만드는 곳은 예상하다시피 대단할 건 없고, 그야말로 '다방' 그 자체다. 쉽게 말하면 재래시장에서 꿀물이나 커피를 태워주는 이동식 가게(?)의 확장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보다 눈에 띈 건 바닥에 놓인 의문의 박스였다. 차를 만드는 곳은 옛날 것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리 봐도 별로 중요할 것 같지 않은, 쓰레기와 비슷한 물건을 왜 굳이 다른 사람들의 눈이 닿는 자리에 그대로 놔두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위에서 잠시 쓰긴 했지만, 주문을 받는 분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어디로 주문해야 할지 다소 망설여지는 점도 불편했다.
미도다방에서 전통의 올바른 계승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 미도다방은 근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보물 같은 곳이지만, 옛것을 오랫동안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다소의 청결과 체제정비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구멍가게식 경영사고로 짐은 치워놓지 않고 가게 한구석에 놔두고, 역할이 분담되어 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잠시 부재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문을 받는 분이 따로 없어 헤매야 하고, 내가 주문한 분의 태도 또한 다소 퉁명스러웠던 점은 그냥 옛것의 매력이라 치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퉁명스러움과 다소의 지저분함은 옛날이니 용서되었던 거지 오래가고 사랑받는 가게가 되려면 이런 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별로 좋지 않은 말만 썼는데, 나중에 계산할 때 보니 계산 석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분이 계셨다. 사장님인가 싶기도 했는데, 그분은 굉장히 좋으셨다.
체험 삼아 한번은 와봄 직한 곳. 강황꿀차는 절대로 시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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