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18. 6. 17. 21:57
작성자
달콤 씁쓸

긴자 (2)

2018.5.


* 일단, 다시 도쿄역

 식빵은 센트레 더 베이커리에서 사려고 했다. 센트레 더 베이커리는 VIRON의 식빵 전문점인데, 12시쯤에 가니 이미 줄이 길다. 줄은 매장에서 식사하는 줄과 테이크아웃을 할 줄로 나뉘어 있었다. 그렇지만 테이크아웃 줄도 길어 보인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테이크아웃에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무슨 테이크아웃이 1시간이나 걸리지? 금방 살 수 있으면 들러야겠다 정도의 가게라 포기하고 다음으로 간다. 마찬가지로 예정에 있었던 VIRON은 휴무일을 확인하지 못한 탓에 닫힌 문만 쓸쓸히 보고 지나쳤다. 

 도쿄역 근처에 있는 도쿄국제포럼 앞 광장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렸는지 노점이 많다. 물건이 오래된 데다 관심 가는 것도 없어 그냥 지나치고 건물 안에 들어가 봤다. 입시설명회가 있어서 건물 안에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건물은 대칭형 곡선으로 이루어졌는데 한 면은 나무로, 한 면은 유리로 이뤄졌다. 유리 덕분에 건물은 채광이 좋으며 탁 트인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건물의 다른 한 면에 발린 목재의 따뜻함, 그리고 바깥에 있는 나무 덕분에 문명의 이지적인 느낌만은 들지 않는다.

 이날은 전날보다 더욱 이상하리만치 추웠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뚜벅이 입장에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만 돌아다녀도 춥다는 건 조금 문제다. 반면 하늘은 햇빛이 쨍쨍한 데다 맑기까지 하다. 미세먼지로 깨끗한 하늘을 못 본 지 오래다 보니 반갑다. 우리나라라면 가을에야 겨우 볼 수 있을법한 하늘인데 말이다.

 도쿄역을 등에 지고 바라보니 앞으로 작은 광장 같은 공간이 있다.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건물 양편에 걸린 일장기가 다른 나라에 왔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요모조모 사진을 찍고 싶지만, 어딜 찍어도 사람이 많다. 특히 건물을 잘 담을 수 있는 중앙은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절대로 정면의 가족을 찍고 싶어서 찍은 게 아니다!)

 파노라마로 찍어봤는데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밤이 되면 더욱 예쁠 것 같다.

 

* 르 쇼콜라 알랭 뒤카스  HP  지도

 비행기 시간이 다가온다. 아직 마지막 일정을 끝내지 못했기에 서두른다. 얼른 르 쇼콜라 알랭 뒤카스 니혼바시점에 들러야 한다.

 가는 길에 있던 미츠코시 니혼바시 본점 건물.

 르 쇼콜라 알랭 뒤카스는 상호에 알랭 뒤카스라는 이름을 걸었는데, 알랭 뒤카스는 아트디렉터로서 초콜릿의 맛을 결정하고, 실제 초콜릿을 만드는 건 쇼콜라티에 니콜라 베르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발상지인 프랑스의 이야기고, 일본은 니콜라 베르제가 전통적 제조법으로 만든 커버춰 초콜릿을 받아 사용하는 듯하여 도쿄에서 완전한 빈투바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해당 가게는 일본에는 도쿄에만 두 지점이 있는데, 하나는 3월에 문을 연 니혼바시점이고, 또 하나는 4월에 문을 연 롯폰기점이다. 니혼바시점은 무려 해외 1호점이라고 한다. 거기다가 상호에 manufacture가 붙는데 롯폰기는 안 붙는 걸 보면 니혼바시점이 제조까지 겸하는 것 같고 롯폰기는 니혼바시점에서 받아서 판매만 하는 것 같다.

 가게 앞에 서니, 마치 백화점의 명품 매장 앞에 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긴장하며 문을 여니 이중문 사이에 계신 직원분이 문을 열어주신다. 가게 안에는 카운터에 직원이 한 분, 그리고 대응직원이 두 분 정도 계셨다. 손님은 나를 포함해 3명 정도다. 손님의 수에서부터 물건 진열, 그리고 숨 막히는 분위기까지 딱 백화점의 그것과 같다. 하지만 반드시 뭔갈 하나 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구경한다.

 가게는 적정 온도를 유지해 초콜릿을 최상의 조건으로 보관하고 있다. 초콜릿은 탁자와 벽면으로 나뉘어 진열되어 있었는데, 탁자에는 봉봉 쇼콜라와 기타 구움과자들이 있었고, 벽면에는 다양한 산지에 따른 태블릿이 벽면에 진열되어 있다.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지만, 비행기를 놓치기 때문에 당연히 불가능하다. 어떤 걸 살지는 정해두었지만, 카카오 산지가 많아서 종류를 고르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직원분의 추천을 듣고 싱글오리진 가나슈와 태블릿을 각각 하나씩 샀다. 상자 안에도 별도 비용 없이 아이스팩을 넣어주신다.

 여행지에서 자주 범하는 실수인 충동구매를 하긴 했지만, 돈으로 행복을 사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마지막 일정까지 완료했다는 성취감과 함께 상자를 들고나오려 하는데 물건을 직원분이 들어주신다고 한다. 문까지 몇 걸음 되지도 않는데 말이다. 엉겁결에 물건을 직원분께 맡기고 숨 막히는 몇 걸음을 내디디니 가게에 들어왔을 때처럼 이중문 사이에 있는 직원분이 문을 열어주시고, 가게를 나와서는 말로만 듣던 90도 인사를 받았다. VIP가 된 기분을 잠시나마 맛볼 수 있었지만 역시 낯설다.

 

* CITAN → 나리타 공항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챙긴다. 오늘 산 물건들을 한꺼번에 찍어보니 뿌듯하다. 

 돌아가는 길에서 본 꽃이다. 분홍빛이 예쁘다. 

 공항철도를 타러 전날 내렸던 히가시니혼바시역으로 다시 갔다. 전광판을 보고 나리타 스카이 액세스가 오는 플랫폼에 섰는데 시각표를 제대로 안 본 탓인지 아니면 전광판을 제대로 안 본 탓인지 얼떨결에 일반 열차에 탑승하여 나리타공항까지 갔다. 도대체 어디에 정신을 판 건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공항에 도착해서 다행이긴 한데 왜 그랬는지 괜히 찜찜했다. 요금 초과분은 역무원께 말씀드리니 친절하게 반환해주셨다. 

 

* 윌리엄즈  HP  지도

일일 정식(새우&오징어튀김 정식)(850엔)

 많아진 짐을 감당하지 못하고 위탁수하물로 맡겨버렸다. 일본에 오면 이상하게 체하거나 속에 탈이 나는 버릇 때문에 이날도 역시 아침 말고는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넉넉잡아 6시간은 지난 것 같다. 거기다 한참 걸은 덕분에 어느새 체한 건 사라진 지 오래다. 기내식이 나오긴 하겠지만 집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역시 여기서 뭔갈 먹어야겠다. 공항에서 비싼 돈을 주고 밥을 먹어야 하는 건 짜증 나지만 말이다. 그런 나에게 공항 5층 덱 근처에 있는 윌리엄즈라는 일식집은 딱이었다. 

 음식은 생각보다는 나오는 데 오래 걸렸다. 출국심사를 통과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에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진 탓도 있을 것 같다. 음식은 밥, 다시, 메인메뉴에 샐러드가 나온다. 가격이 저렴해서 음식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는데 새우튀김이 생각보다는 실했다. 아쉬운 건 오징어튀김 크기가 너무 커서 이로 잘라먹기에 한계가 있었다는 거다. 결국 한 조각을 입으로 다 넣어버렸다. (아쉽다) 다시는 시판제품을 사용한 것 같긴 하지만 튀김의 느끼함을 잡기엔 충분했다.

 

* 나리타공항 → 김해공항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해물볶음밥이 나왔다. 원래도 어떤 음식이든 잘 먹긴 하지만 일본의 느끼하고 짠 음식만 먹어서인지 더욱 맛있었다. 

 김해공항에 착륙하고 입국심사를 받으려니 검역에서부터 줄이 엄청나다. 가만 보니 필리핀에서 도착한 비행기가 겹친 것 같다. 리무진을 예약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상황을 보니 서둘러 표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 창을 켜니 나리타에 있을 때만 해도 남아돌던 좌석이 얼마 없다. 서둘러 예약한다. 위탁수하물도 맡겼으니 빨리 나올 가능성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집에 늦게 도착하면 피곤하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캐리어를 보는데, 내 캐리어가 나온다. 캐리어만 찾으면 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다. 시계를 본다. 예약한 리무진 시간을 당겨도 될 것 같다. 당황과 기쁨에 허둥대다 영수증을 쏟긴 했지만 빨리 수습하고 겨우 1자리밖에 남지 않은 앞 시간대 리무진을 예약한다. 예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 전에 예약했던 리무진을 취소하는데도 수수료가 들지 않았다. 

 정류장에 가니 차량이 없어서 당황했지만 기다리니 리무진이 온다. 즐거운 마음으로 짐을 싣는다. 출발 전 비행기가 10분 지연될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리무진을 탈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이번 여행에는 운이 참 잘 따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