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22. 9. 14. 21:57
작성자
달콤 씁쓸

눈, 눈, 눈 (2)

2022.3.


 삿포로역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에서 산 도시락으로 아침을 마쳤다. 마감 세일에 산 거라 무려 292엔이다!  

초콜릿(540엔)

 후식으로는 마찬가지로 전날에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에서 산 케이크를 먹었다. 케이크는 '하얀 연인'이라는, 쿠크다스 비슷한 과자로 유명한 '이시야' 의 것인데, 맨 위에 있는 초콜릿부터 ㅍ사 케이크 맨 위에 있는 꽃잎 모양의 싸구려 화이트초콜릿 맛이 나서 입을 버렸다. '하얀 연인' 과자는 안 먹어봤지만, 그보다 비싼 케이크가 이런 맛이라면 과자는 볼 것도 없다. 

유키야콘코(95엔)

 눈이여 와라, 라는 뜻의 유키야콘코. 롯카테이 과자는 실패가 없다. 커다란 미쯔 맛이다. 

 버스가 일찍부터 다니지 않아 느긋하게 숙소를 나왔다. 오전에는 두대불전에 들렀는데, 삿포로 지하철 종점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지하철은 중간 가서는 아예 투명 터널 안을 달리는데, 그 때문인지 전철 못지않게 시끄럽다. 갈아탄 버스는 고속버스처럼 어째 점점 위로 올라간다. 덕분에 경치는 좋고 눈 구경도 원 없이 한다.

 두대불전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고 한다. 동그란 굴 안의 석불이란 점에서 석굴암이 떠오르는데 콘크리트 소재라 좀 더 차가운 느낌이 든다. 여름엔 라벤더가 맞이하지만, 눈으로 덮인 것도 나름의 흥취가 있다. 날씨만 좋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쉽게도 바람이 불고 난리가 났다. 중간중간 눈발도 날리길래 이날은 망했다, 싶었는데 그 덕분에 쌓여 있던 눈이 물안개처럼 위로 살살 피어오르는 모양이 아름다웠다. 두대불전 옆에는 카페도 있지만,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두대불전에 내려서 다음 차를 탈 때까지 1시간 남짓의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들를 여유는 없다.

 개방된 천장으로 빼꼼히 나온 부처의 머리와 눈 덮인 산까지 보고 이제 버스를 타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삿포로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할지 몰랐다. 두대불전이 있는 공원묘지 정문을 지나칠 때 본 정거장이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곳인가 싶어 그쪽까지 걸어가 봤다. 그런데 걸어가면서 생각해보니, 두대불전에 도착할 때 내렸던 버스가 두대불전을 빠져나간 걸 본 적도 없고, 만약 지금 향하고 있는 버스 정류장이 정말로 삿포로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이라면 버스가 진작에 지나가서 대기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거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행여 버스를 놓칠 세야 조금 전에 내렸던 버스 정류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헤맨 덕분에 마스크를 쓴 의미불명의 모아이상도 보긴 했지만, 까딱하면 1시간을 날릴 뻔했다.

치킨커리, 코코넛 수프 추가(1050엔)

 두 번째 수프 카레 도전은 삿포로역 서쪽에 있는 히리히리에서 했다. 수프 카레에 코코넛 밀크를 넣으면 좀 더 맛있어질까 싶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짠맛부터 올라온다. 어제 먹은 스아게보다 저렴해서 그런지, 들어간 야채도 적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 있는, 튀긴 브로콜리만은 맛있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그리고선 오타루로 갔는데, 오타루 구경보다 열차를 탄 경험이 이날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삿포로역에서 오타루로 가는 노선은 바다에 접해 달리는데, 열차 좌석이 지하철처럼 마주 보게 되어 있어서 커다란 창으로 바다를 함빡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 하늘은 여전히 회색빛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열차는 일반 열차 좌석이라, 운이 좋았다 싶다.  

 오타루는 운하와 상점가를 목적으로 가는데, 운하는 오타루 역에, 상점가는 미나미 오타루 역에 가깝다. 나 역시 미나미 오타루 역에 내렸는데, 나와보니 이정표도 없고 앞은 휑하다. 휴대폰이 오래돼서 함부로 지도를 켤 수는 없고, 웬만하면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하는데 사방이 눈이니 갈피를 못 잡겠다. 혹시나 해 앞사람을 따라가다 보니 다행히도 오타루의 상점가로 향하게 되었다. 역시 관광지에서 길을 헤매면 앞 사람을 따라가는 게 정답인 것 같다. 만약 아무도 없다면, 미나미 오타루 역에서 왼쪽에 있는 바다 쪽으로 걸어간 다음, 근처에 이정표의 '메르헨 사거리' 방향으로 향하면 된다. 내리막길 중간에는 튀김을 파는 기상천외한 자판기가 있다. 

 내리막길 끄트머리에서 반겨주는 건물 중 하나는 오탸루 오르골당이다. 문 옆에는 증기로 작동하는 시계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흰 구름 같은 증기를 볼 수 있다. 시계는 일정 시간마다 울리는데, 마치 어릴 때 단소를 연습한답시고 병에 바람을 부는 소리랑 닮았다.  

 오타루 오르골당은 이름 그대로 다양한 공예가의 오르골을 다양하게 취급하고 있으며, 사진에는 조그맣게 나와 있지만 잡화도 취급한다. 그렇지만 오르골이나 유리공예와 같은 것들은 오타루 상점가 대부분이 취급하고 있는 것들이라, 천천히 상점가를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될 것 같다.  

 오타루 오르골당과 함께 오타루의 사거리를 지키는 건물 중 하나인 르타오 본점. 연식이 느껴지는 건물이지만 관리가 잘 되어 깔끔하다. 탑에서는 정각마다 종소리가 나는 게 특징이다. 작긴 하지만 건물 3층에 전망대도 마련돼 있어 오타루 일대를 둘러볼 수도 있다. 

 다행히도 전망대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런데 너무 조용히 3층 버튼을 누른 탓인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노부부 중 할아버지께서 '버튼에 저절로 불이 들어왔어!'라고 하셔서 조금 웃겼다. 인기척을 내야겠다 싶다. 이분들과는 전망대에서 내려올 때 또 한 번 마주쳤다. 

딸기 타르트
홍차(카리용의 음색)

2층은 카페로, 사람은 많지만 생각보다 금방 자리가 난다. 공간은 바깥의 건물 같은 오래된 아름다움이 있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신나서 왁자지껄 떠들다 보니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주문한 건 990엔의 케이크와 음료 세트로, 케이크로는 종업원이 추천해 주신 딸기 타르트를 골랐다. 고를 수 있는 음료 중에는 홍차도 있었는데, 보통의 카페라면 얼그레이, 다즐링, 아쌈을 내는데 르타오는 '카리용(악기의 한 종류)의 음색'이라는 자체 블랜딩 홍차와 계절 홍차 두 종을 제공한다.

 그런데 오타루 운하까지 걸어보니, 르타오는 본점을 비롯하여 매장이 무려 4개나 된다. 케이크 중심의 본점, 동계휴업 중인 본점 맞은편 가게, 본점을 지나 오른편에 있는 경양식과 파르페와 같은 디저트를 파는 가게, 그 맞은편에 있는 초콜릿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 나름대로 특성화가 되어 있어 입맛에 맞게 가면 되긴 한데, 기껏해야 가로지르는 데 30분인 동네에 이렇게까지 가게가 많으니 어질어질하다.

 애매한 시기라서 그런지, 평일이라 그런지, 만연 방지 대책 실시 중이라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상점가는 반 정도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나마 문을 연 곳 또한 17시 언저리까지만 영업한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면 훨씬 아름다울 곳인데, 그럴 때면 상점가는 아예 문을 닫는 게 아이러니하다.

 큰길을 따라 오타루 쪽으로 걸어가자니, 처음에는 소품 가게가 많았지만 점차 식당이 많아진다. 문을 닫긴 했지만 길거리 음식도 있고, 해산물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오타루 오르골당부터 참 오래도 걸었지만 지루하지 않다. 큰길로 빠져 운하로 향하면 식당만 모아놓은 데누키 코지라는 곳도 있는데, 식당 사이로 난 길이 좁은 골목(코지;小路)이란 이름 그 이상으로 좁다. 한두 사람 들어가면 길을 막을 정도다. 아쉽게도 여기 또한 영업하는 가게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드디어 운하에 도착했다. 그런데 일몰이 지나고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음에도 운하는 여전히 어둑어둑하다. 운하가 밝혀질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사진도 잘 안 나올 테고, 추운데 무작정 기다릴 자신도 없어서 철수했다. 

잔기정식(940엔)

 오타루를 구경하며 수없이 본 게 풍부한 해산물을 이용한 해산물 덮밥(카이센동)이었지만, 날것을 좋아하지 않아 다 지나치고 시장에서 좀 떨어져 있는 닭튀김 가게 나루토에 갔다. 특이하게도 메뉴판에 닭튀김을 가리키는 단어 '가라아게' 대신 홋카이도 방언인 '잔기'를 사용하고 있다.  

 생강으로 염지한 닭은 약간 덜 익은 듯 촉촉하지만, 튀김옷은 단단해 먹을 때 조심해야 한다. 어쩐지 먹는 게 힘들더라니 입천장이 다 헐었다. 하지만 이건 취향이라 치는데, 밥은 찰기가 없다. 식사가 재미가 없다. 남은 튀김은 싸갈 수 있으니 그건 고맙다. 

 마음에서부터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지 못해 터덜터덜 아케이드를 지나 오타루역으로 갔다. 돌아가는 차편이 금방이었다. 동양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매력인 오타루. 거리 전체가 낯선 즐거움으로 가득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거리만 걸어도 즐겁다. 그렇지만 마냥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서양의 것을 우위에 두고 있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들을 하며, 그새 까맣게 변한 바다 그 너머를 쳐다본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