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연고 (4)
2022.2.
숙소에서 조식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전날 먹을거리를 사는 걸 잊어버려 식사하기 편한 숙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숙소는 유니조 호텔이었는데, 조식을 일식과 양식 중 선택할 수 있다. 음료는 무제한이지만 어디 운동이라도 하고 오지 않는 이상 그렇게까지 음료를 마실 일은 없으니 허울 좋은 말이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나고야시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고흐전을 보러 갔다. 해당 전시는 과거 도쿄에서 열린 고흐전의 순회전인데, 당시 고흐전을 알게 된 지 너무 늦어서 매진이라는 글자 앞에 고흐전을 눈물로 보내야 했던지라 반가웠다. 전시장은 평일 아침이었음에도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고흐전의 제대로 된 제목은 '고흐전: 공명하는 혼 헬레네와 빈센트'로, 전시는 수집가 헬레네가 모은 고흐 작품에다 반고흐 미술관의 고흐 작품으로 구성돼있다. 그의 생애를 근거지와 시간순으로 구성한 전시에는, 아쉽게도 고흐의 특징적인 화풍이 드러난 작품이 생각보다 없었다. 유명한 작품도 '밤의 프로방스 시골길' 정도가 고작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수집가 헬레네라는 사람이 고흐 작품만 모으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시가 고흐 작품으로만 구성되지 않았는데 이 또한 고흐 작품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물론 고흐의 자리를 차지한 작가는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쇠라, 밀러, 몬드리안이었지만, 작가의 유명세를 떠나 전시회 제목이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작품 옆에 붙은 설명이 비교적 큰 글씨여서 읽기 편한 건 좋았다.
고흐전 내부에는 작품에 가까이 가지 않도록 철책이 설치돼 있었다. 전시장의 미관을 해치는 낡은 구조물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고흐전을 나와 상설전으로 가다 보니 실내도 가만 보니 마찬가지로 낡았다. 그래도 작품들은 썩 재미있다. 백남준의 작품도 있어 잠시 반갑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미술관은 멕시코 르네상스 작품도 중점적으로 수집하고 있는데, 해당 미술관이 마찬가지로 중점을 두고 수집하는 향토 작품의 작가 중 한 사람이 멕시코의 영향을 받아 그럴지도 모른다.
나고야시 미술관 바로 근처에는 나고야시 과학관도 있다. 이 커다란 두 건물은 시라카와 공원을 일부 에워싸는데, 공원이라고는 하지만 분수 말고는 허허벌판이라 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미술관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불교 사찰인 오스칸논이 있다.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유명하기만 할 뿐 근엄한 느낌은 없다. 상점가 안에 갑자기 나타난 제법 큰 절이란 느낌뿐이다. 사찰 내에는 비둘기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는데, 알고 보니 근처에서 먹이를 팔고 있었다.
오스칸논은 여러 방향으로 상점가로 통하는데, 동쪽으로 난 길을 가면 먹자골목이 나온다. 분위기도 마치 우리나라의 그것으로, 일본이라면 오사카의 난바 일대나 도쿄의 우에노 아메요코 상가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코로나 이전부터 먹으면서 돌아다니는 걸 싫어해서 구경만 했다.
저녁은 나고야역으로 돌아와 스파게티하우스 챠오에서 먹었다. 역에 있는 음식점인 만큼 좌석도 적당히 넓어 캐리어를 두기 좋다. 메뉴판에 나온 사진을 보고 상상했던 것과 달리 면은 생각보다 푹 삶기진 않았다. 색이 강하긴 한데 소스 맛도 생각보다 강하진 않다. 오뚜기 봉지 스파게티를 생각하며 싸구려 케첩 맛을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는데, 소스는 그와는 또 달랐다.
개찰구로 들어가기 전 에쉬레 매장에 들렀다. 에쉬레라는 버터 상호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가게는 나고야역 사쿠라도오리(桜通;벚꽃길) 방면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은 곳에 있어 묘하게 찾기 어렵다. 구매한 건 사브레 샌드로,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에 324엔이나 한다. 그런데 결제를 위해 카드를 내미니, 카드에 적힌 이름을 보고선 직원들끼리 바쁘게 눈빛을 교환하는 게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항의라도 할 텐데 그땐 왜 못했는지 지금에서야 아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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