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22. 9. 5. 21:25
작성자
달콤 씁쓸

눈, 눈, 눈 (1)

2022.3.


챠오챠오 교자(1인분 660엔)

 오후 비행기로 홋카이도에 갔다. 원래 여행계획을 철저하게 세우는 편인데, 홋카이도 여행은 이상하게도 계획을 짜기 싫어 게으름을 피우다 여행 전날에 반 정도, 그리고 여행 당일에 나머지 반을 짜는 무리수를 뒀다. 그러다 보니 공항으로 가기 전 식사는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니 허겁지겁 여행길에 나서게 됐다. 천신만고 끝에 공항에 도착하니 기상악화로 회항 가능성이 있다는 안내가 있어 겁먹었지만, 난기류로 흔들린 것 외엔 무사히 홋카이도에 도착했다.

 신치토세 공항은 홋카이도의 중심가인 삿포로와 상당히 떨어져 있음에도 열차 하나로 갈 수 있어 접근성이 좋았다. 그렇지만 저녁 비행기다 보니 저녁 먹기가 마땅찮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수프 카레 가게도 수프가 다 떨어졌대서 아쉬운 대로 근처 교자 가게에 들러 포장해왔다. 놀랍게도 이게 일본에서의 첫 교자이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함)이 이런 거였구나. 소스를 냅다 뜯어 부었더니 짠 게 흠이었다. 

 호텔은 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JR인 삿포로 키타2조인데, 다음부터는 반드시 역에서 5분 거리의 숙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운 지역이라 지하도가 호텔까지 뻗어있는 건 좋지만 걷기 번거롭다. 호텔 자체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는지 시설도 좋고 넓었다. 단 하나, 생수가 없다는 것만 빼고. 

 다음 날에는 구 홋카이도 도청을 봤다.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구 홋카이도 도청은, 과거 불타고 벽만 남아있던 걸 바탕으로 재건축된 거라 한다. 내부는 현재 공사 중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만 둘러봤다. 하여튼 일본은 여행할 때마다 유명 관광지가 공사를 안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겨울의 홋카이도에서는 눈이 일상다반사일 텐데도, 구 홋카이도 도청 주변에는 눈사람들이 가득하다. 어쩌면 홋카이도에 찾아온 관광객이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합세해서 눈사람을 하나 더 늘리고 싶었지만, 눈이 온 지 시간이 지나서 사진의 모양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대신 사진을 찍어보려고 하니 눈이 너무 부시다. 아차, 선글라스를 챙겼어야 했는데...

 삿포로역을 통과해서 홋카이도 대학으로 갔다. 한창 봄방학을 즐기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대학교는 들를 이유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제설이 깔끔하게 된 삿포로역 주변과 달리 홋카이도 대학은 온통 눈으로 가득하다. 발이 쉽게 빠져 걷기는 힘들고, 체력은 쉽게 소모된다. 그렇지만 그걸 이겨낼 만큼 건물도 나무도 아름답다. 빛바랜 갈색의 소용돌이가 인상적인 위 나무의 이름을 모르는 게 아쉽다. 포플러인 듯도 하다.

 구글 맵으로 볼 때는 부지가 상당히 넓어 보이지만 주요 건물은 정문을 기준으로 남쪽에 몰려 있어 걱정할 필요는 없다. 4월에서 11월 사이에는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농장도 개방한다는데, 겨울이라 역시 가지 못했다.

 건물 구경도 적당히 했으니 카페 '호쿠다이 마르쉐'에 가려고 했다. 카페로 가려면 제설도 제대로 안 된 내리막길을 거쳐야 해서 고민하는데, 할아버지가 그 길을 스, 스, 스스스... 하더니 슥 내려간다. 아, 강인한 홋카이도인이여! 덕택에 용기를 내서 무사히 카페로 갈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확실히 눈이 와서 그런지, 홋카이도 사람은 눈에 특화되지 않은 부츠나 구두 같은 걸 신고도 태연히 잘 다닌다. 바닥에 아이젠이라도 달려 있나 싶다. 그런 상태에서 자전거도 타고, 캐리어도 끌고, 가벼운 뜀으로 조깅도 한다. 강인한 건 연령과 종을 초월하는데, 양옆으로 눈이 높게 쌓인 곳에 강아지도 유아도 올라가서 논다. 물론 눈은 그전에 내린 거라 이미 단단해져 있어 빠질 위험은 없지만, 아무리 보호자를 동반한다고 해도 이런 형태의 놀이는 위험하지 않나 싶다. 

젤라토((왼쪽에서부터) 홋카이도 대학 우유, 하스컵)(500엔)

 홋카이도는 유제품으로 유명하다고 하니 우유와 젤라토를 먹었다. '하스컵'이라는 신기한 맛이 있어서 물어보니, 홋카이도에서 자생하는 베리류 식물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많이 시진 않았다. 

홋카이도 대학 우유(350엔)

 뜨거운 걸 못 마셔서 우유는 젤라토를 먹은 후 마셨는데, 도쿄의 홋카이도 박람회에서 사 마셨던 저지 우유나, 마트에서 파는 유지방 높은 우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있었다. 역시 원산지에서 가까운 게 이유인가 싶다. 

 걷다 보니 박물관도 있어 들어갔는데, 학교의 역사나 학과를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루할 법도 하지만, 학과와 관련한 물건들도 전시돼 있어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대학의 생생함도 느껴진다. 심지어 지질학과에서 연구에 사용한 암석은 기념품으로도 판다. 

소금라멘(750엔)

 점심은 홋카이도 대학 정문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마루타카 라멘에서 먹었다. 하지만 사실상의 첫 끼니인데다, 그전까지 한참을 걸은 뒤 한 식사라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국물은 맛있었다. 

 홋카이도 대학 바깥쪽에 있는, 시린 그림자를 떨어트리는 자작나무를 지나 찾아간 삿포로 성 미카엘 교회. 건축가 안토닌 레이몬드가 설계한 곳인데, 점심 식사 후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다고 진을 뺀 뒤 간 곳이라 그런지 큰 감흥은 없었다. 

 사실 이날은 버스 투어를 통해 아바시리로 갈 예정이었던 지라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는데, 글쎄 기상악화로 투어가 취소된 거다. 졸지에 하루가 비게 되었고, 삿포로 주변을 적당히 탐색하다가 도청에, 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곳이 모레에누마 공원이었는데, 설마 그게 지옥문이었을 줄이야...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데다, 겨울엔 특정 구간만으로 출입이 가능하다는 걸 모르고 갔더니 허탕만 쳤다. 시간 낭비, 돈 낭비였다. 

단호박 떡(120엔)
파삭파삭 시레토코 닭과 야채 카레(1200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서 탈출해 도착한 수프 카레 가게 스아게. 기대했던 것보다는 맛이 없다. 카레에 물을 타고 건더기를 넣은 게 수프 카레인가 싶다. 아, 닭고기와 함께 주문한 단호박 떡은 맛있었다. 

 가게를 나와 스스키노 역 주변을 걸었는데 전광판이 많아 화려하다. 넋 놓고 보고 있으려니 노면전차도 시야에 들어온다. 

그렇게 도착한 오도리 공원. 한쪽 끝에 타워가 있는 거나, 한쪽으로 긴 형태인 게 꼭 나고야의 히사야오도리 공원이랑 닮았다.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눈이 갑자기 내리기 시작해 지하로 들어갔다. 그런데 홋카이도는 눈도 차원이 다르다. 여태까지 겪은 눈에 비하면 여기의 눈은 뭔 우박 수준이다. 

홋카이도 밀크 쿠키 삿포로 농학교(3개입 180엔)

 숙소에 돌아와서 낮에 산 것들을 하나씩 먹어본다. 우선은 호쿠다이 마르쉐에서 산 '홋카이도 밀크 쿠키 삿포로 농학교'. 홋카이도 대학에서 파는 건데 상호가 왜 삿포로 농학교일까 싶었는데, 삿포로 농학교가 홋카이도 대학의 전신이라 그런가 싶다. 쿠키는 부드럽고 맛있긴 한데 쇼트닝이 들어갔다. 

와카사이모 이모초콜릿(2개 350엔)

 한편 삿포로역에서 산 산 군고구마 모양의 과자 '와카사이모'는 흔한 앙금류 과자다. 초콜릿 코팅을 입혔음에도 심드렁한 맛이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