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22. 8. 25. 22:48
작성자
달콤 씁쓸

상처와 연고 (3)

2022.2.


 나가시마 리조트의 일부인 나바나노사토(유채꽃 마을). 속속들이 즐겨주겠단 각오로 일찍부터 방문했다. 

 2월 하순이면 매화가 필 거로 생각했는데, 매화나무가 300그루 정도 있다는 매화원 중 어느 나무도 만개 혹은 만개에 가깝게 개화하지 않았다. 앙상한 가지 속 겨우 찾은 꽃은 조그맣지만, 향기는 진해 존재감이 뚜렷하다. 식수 된 나무의 나머지 대부분은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종이라 비슷한 시기에 만개를 맞이할 듯했다. 원내는 낮은 단차도 있어 전체를 조망하기에 좋아 보인다.  

 일루미네이션이 중심인 나바나노사토에 일찍부터 간 건 베고니아 온실도 한몫한다. 베고니아 온실은 이름대로 온갖 종류의 베고니아를 모아놓은 곳으로, 총 4구역으로 나뉜 온실 중 1실과 4실을 차지한다. 추가 입장료 1000엔을 지불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서 입장료가 비쌀지언정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온실은 첫걸음부터 감탄이 나왔다. 화분이 아래에만 있는 게 아니라 천장까지 있다. 그 전부가 베고니아다. 땅에 붙은 화분에는 하나하나 급수시설이 달려있어 섬세함이 느껴진다. 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보았던 촌스러운 빨강과 초록의 작은 베고니아만 생각했던지라 그 차이에 놀랐다. 

후쿠시아
(아마) 베고니아 마큘라타

 2실은 열대식물이 중심이다. 글로만 보던 식충식물 네펜데스에는 항상 소화액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소화액이 많지 않았다. 처음 보는 식물인 후쿠시아는 크기는 작지만, 눈길을 끌 정도로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여왕의 귀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지만 춤추는 발레리나에 더 가까운 모양새다.

 이어지는 3실은 장미정원으로 야외에 있어 바로 4실로 왔다. 1실과는 또 다른 모양으로 아름답다. 바깥은 아직도 겨울이지만 온실은 식물의 생장에 적합한 온습도가 유지되어 적당히 따뜻하다. 출구 방면으로 사진을 찍어서 그렇지, 뒤편에는 간단한 카페와 의자가 설치돼 있어 햇빛 아래서 조금 눈을 붙였다. 일루미네이션까지 시간이 있어서 최대한 느긋하게 온실을 구경했는데도 여전히 시간이 남는다. 

차와 떡 세트(300엔)

 온실을 나오니 걱정이 태산이다. 나바나노사토가 넓은 편도 아니고, 원내 시설인 온천도 안 좋아하다 보니 시간을 죽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차나 하나 마시며 시간을 보내자 싶어 야스나가 떡집에서 차와 떡이 세트로 된 메뉴를 주문했다. 가게 바깥 평상에서 떡을 먹어야 해서 걱정이 되었지만 차가 있어서 조금 나았다. 하지만 메뉴에는 차 세트라고 적혀있었지만 애초에 떡이 중심인지라 차는 음식점에서 내오는 차 수준이다. 한편, 떡은 포장된 걸 내주는데 끝이 잘려있어서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안에는 팥소가 든 흔한 떡이다. 봄이 가까워 하나는 벚꽃떡이었지만 맛의 차이는 없다. 같은 떡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진득하지는 않다. 

안심 돈가스 냄비 요리 정식(1680엔)

 무료 족욕탕에서 발을 담그며 시간을 죽인 끝에 드디어 저녁 시간이 되었다. 카츠마루에서 안심 돈가스 냄비 요리 정식을 먹으니 몸이 따뜻해져서 좋다. 사진만 보면 국물이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작하다.

말차우유(450엔)

 애매하게 시간이 남았지만 더 이상 볼 곳도 없고 해서 카페에서 음료를 마셨다. 비슷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 실내는 소란스럽다. 

 일루미네이션이 시작되면 원 전체에 종이 울리며 불이 들어온다. 일루미네이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꽃밭이 있던 공터인데, 그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45m까지 올라간다며 광고하는 후지산 모양의 놀이기구 같은 전망대가 있다. 가격은 500엔으로, 전망대가 사방으로 돌아가며 나바나노사토를 포함한 주변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전망을 보러온 게 아니기 때문에 돈이 아까웠다. 

 중심이 되는 일루미네이션으로 가는 길에서 제일 먼저 통과하게 될 빛의 터널. 입구만 볼 땐 심드렁했지만 안으로 들어오니 나름대로 멋있다.  

 중심이 되는 일루미네이션. 그냥 조명만 밝히는 게 아닌 하나의 공연이다. 2021~2022년의 주제는 '운해(雲海)'였는데, 이름대로 공연 중간에 안개가 나오는 연출이 볼 만했다. 공연 시간도 약 10분 정도로 짧지 않았다. 일루미네이션 전부터 너무 지쳐서 일루미네이션 또한 실망하면 어떡하지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기대했던 만큼의 일루미네이션이었다. 하지만 겨울의 나바나노사토는 입장료 외 추가 요금 지불 없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전무하다. 겨울이니 당연히 꽃은 기대할 수 없다. 남는 건 음식점이나 매점, 카페, 그리고 기념품 가게인데, 중간에 허기를 달래줄 곳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건 정도를 넘어섰다. 상업성이 심하다. 베고니아가든이나 온천이 그나마 괜찮은 선택지이지만 당연히 추가 요금이 필요하다. 14시 이전에 나바나노사토에 가면 베고니아 가든 할인권을 주지만, 절대 할인권에 혹하지 말자. 일루미네이션만이 목적이라면 식사 시간 1시간에 둘러보는 시간 1시간을 더해 일루미네이션 시작 2시간 전에만 도착해도 충분하다. (4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