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를 걷다 (2) 스미다강
2022.4.
간밤에 비가 내려 다시 겨울로 돌아간 듯한 날씨다. 낮아진 기온에 깜짝 놀라 스웨터를 껴입으면서도, 4월이면 그래도 봄이어야지 않은가 하는 마음에 외투는 다소 쌀쌀한 봄 날씨에 어울릴 만한 것을 걸치고 나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은 머플러까지 두르고 나갔는데 다행히도 살짝 드리운 겨울의 그림자는 낮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사쿠사 하면 역시나 센소지고, 또 센소지뿐이었지만, 벚꽃을 찾아 스미다강 쪽으로 걸어가 보니 풍경이 새삼 다르다. 아사쿠사의 풍경인 줄만 알았던 도쿄 스카이트리와 금색의 아사히 본사 건물, '황금 불꽃'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인 '아사히 슈퍼 드라이 홀' 건물들은 강에 의해 현대라는 영역으로 떨어져 나간다.
스미다강은 현대와 전통이라는 상반되는 두 풍경을 거느렸지만, 아무래도 여기에 어울리는 풍경은 아사쿠사 쪽이다. 넓은 강을 바로 옆에 낀 스미다 공원의 물결치는 산책로, 유람선, 그리고 느릿느릿한 전철은 사람을 절로 감성적으로 만든다. 강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진을 치는 것도 이 때문이겠다.
평소라면 사람들이 몰린 곳에 굳이 머리를 들이밀지는 않는데, 이날만큼은 풍경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소심하게 끼어들어 몇 장을 찍었다. 담쟁이 같은 식물과 갈대, 벚꽃의 조화만으로도 좋은데 여기에 전철까지 있으니 이 이상 좋을 수가 없다. 여러 사람으로 담보된 약속된 구도는 흔하디흔한 일본의 풍경이지만 그걸 직접 찍으니,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하다.
벚꽃은 계단을 올라와야 있다. 건물에 자잘한 공사, 놀이터, 화단 등으로 산책로가 그리 넓지는 않지만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답답하기보다는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벚꽃은 흔히 볼 수 있는 분홍빛 벚꽃에 수양 벚꽃, 흰 벚나무까지 있어 다채롭다. 군데군데에 있는 버드나무는, 스미다 공원과 아사쿠사의 오래된 느낌과 합쳐져 추억을 걷는 느낌을 준다.
감동하는 건 좋지만, 식사 때가 조금 지났다. 서둘러서 걸어간다. 혹여나 점심 영업이 끝나면 어떡하나 싶어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도 무츠미 솥밥의 문은 열려 있었다. 해산물 솥밥이 주인 곳이지만 닭고기 솥밥도 있다. 주문은 단품으로 했지만, 평일 점심시간이라 반찬 두 개, 쓰케모노(절임 야채), 된장국이 함께 나온다. 여기에 추가금을 내면 샐러드나 일품요리 등을 먹을 수 있으나, 이 역시 평일 점심시간에 한정된다.
솥밥이기 때문에 주문한 지 30분 정도 지난 뒤에야 식사할 수 있었다. 솥밥의 재료는 체감상 닭고기가 7할에 나머지는 표고가 1할, 죽순이 2할 정도를 차지한다. 밥은 적당히 윤기 지며 간이 세지 않다. 밥을 다 먹어가면 직원분께서 누룽지 긁어드릴까요(こげとりますか), 라고 물어오신다. (돌)솥밥의 핵심은 역시 누룽지 아닌가. 당연히 부탁드리고 밥을 말 그대로 싹싹 긁어먹었다.
된장국은 부드러운 간장 맛으로 전에 먹은 돈카츠 돈키의 된장국이 콩의 부드러운 맛을 묽힌 것과 비교된다. 반찬은 첫 번째 사진의 것이 입에 맞았고, 두 번째 사진의 것과 쓰케모노(절임 야채)는 생강과 겨자 맛이 느껴져 손이 가질 않았다. 한편 두 번째 사진의 반찬의 경우, 처음에 탁자에 놓을 때부터 종업원이 잘못 놓아 국물이 조금 흘렀는데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 입맛에도 안 맞는 반찬이 공연히 밉게 보인다.
식사 후에는 역시 군것질을 해야 한다. 스즈키엔으로 갔다. 차와 차를 이용한 여러 가지 음료 및 디저트를 파는 곳이다. 그중에서 스즈키엔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데 가장 큰 이유는 말차 디저트를 만드는 가게 '나나야'와 협업한 젤라토다. 여러 가지 차 맛이 젤라토로 준비되어 있지만, 말차 젤라토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7단계로 진하기를 나누어 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진한 7단계 말차 젤라토는 무려 '세계에서 가장 쓴 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이 붙은 만큼 7단계 말차 젤라토는 가격도 다른 젤라토에 비해 조금 비싸다.
7단계 말차 젤라토를 고를 경우, 가격은 당시 기준 한 가지 맛만 즐길 수 있는 싱글 컵이 570엔, 두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는 더블 컵이 680엔이었다. 처음에는 7단계 말차 젤라토만 먹을 생각이었지만, 가격 차이를 보니 더블 컵을 고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느긋하게 젤라토를 먹을 생각은 버리는 게 낫다. 가게 안에도 가게 밖에도 벤치는 있지만 그 수가 적어 대부분 선 채로 젤라토를 먹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면 북적북적할 텐데, 그 속에서 맛있다 외의 감상을 끌어내기란 힘들다.
군것질은 계속된다. 계속 걸어가 타이야키 샤라쿠에서 일본의 붕어빵, 타이야끼를 샀다. 우리나라와 달리 한 마리 한 마리가 비싼데, 먹어보니 눅눅한 모나카 껍질 맛이 나서 입만 버렸다. 구운 지 좀 된 걸 내와서 그런 듯하다.
타이야끼를 먹고 캇파바시 도구 거리로 내려왔다. 도구 거리라고 하지만 주방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주로 들어서 있다. 식기와 칼은 물론이거니와 제과용품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식기를 보자니 절로 지갑이 열리려고 했지만,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식문화로 인해 설사 식기를 산다고 해도 우리네 일상적인 식사에 활용하기는 어려울 듯 해 구경만 한다. 캇파바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뒤, 지하철 긴자선 타와라마치 역이 있는 사거리에서 서쪽으로 꺾어 걸어간다. 마찬가지로 지하철 긴자선 이나리초 역에 이르니 분위기는 사뭇 달라져 불단이나 신사 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아졌다.
날씨가 좋으니 어찌저찌 우에노 공원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초봄인데도 5월 같던 젊은 이파리의 나무는 저녁 햇살을 받아 부드럽게 빛난다. 그렇지만 벚꽃 명소로 유명한 우에노 공원치고는 벚꽃이 보이지 않는데, 벚나무가 시노바즈 호수 주변과 서쪽 산책로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산책로에서 볼 수 있는 벚꽃은 스미다강과 비슷하게 연분홍색이 가장 많았고, 그보다 조금 진한 색도 보였다. 길도 넓어 다양한 색의 벚꽃을 감상하며 걷기 좋지만, 아쉽게도 만개했었을 벚꽃은 비 때문에 볼품없어졌다. 여기에다 원래라면 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꽃놀이도 즐길 수 있는 곳에, 코로나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해 망을 쳐 놓으니, 풍경은 더더욱 초라해진다.
우에노 공원에 온 게 처음은 아니지만, 공원에 있는 시노바즈 연못은 이번이 처음이다. 변명을 하자면, 연못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데다, 해당 장소에서 연못으로 이동하려면 연못에 면한 서쪽 산책로 쪽으로 걸어간 다음 계단을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돌아다니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산책로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고, 연못을 보았다. 계단은 높이가 다른 곳을 이어줄 뿐인 구조물인데, 분위기 또한 계단을 기준으로 확연히 달라진다. 초록 빛이 생생한 나무보다 벚나무가 많아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지평선 언저리에서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빛은 오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인다.
봄이니만큼 시노바즈 호수는 벚꽃과 버드나무를 끼고 있었지만, 저녁 햇살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갈대와 오리에 부드럽게 빛을 지피다 보니 가을의 쓸쓸함도 느낄 수 있었다. 물가에 있던 바싹 마른 연밥과 갈대 옆에 살벌하게 잘린 연꽃 줄기는 여름의 우에노 공원도 분명 아름다울 거라 약속한다.
계단에 일직선으로 생긴 노점상은 축제도 아닌데 언제 또 생겼는지 시끌벅적하게 사람을 끌어들인다. 저기만큼은 절대 지나가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다른 길로 빠져 호수를 돌았지만, 해가 떨어지니 점점 추워져 지름길인 노점상 쪽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서 볼 때는 끔찍했던 곳이지만 또 막상 지나가니 생각보다 지나갈 만한 게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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