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16. 6. 12. 14:28
작성자
달콤 씁쓸

감천문화마을  HP  지도

2016.6.


 원래는 부산에서 백화점 구경이나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부산역에서 남포동으로 이동하려고 1호선 지하철을 타는 도중, 노선표 위에 1호선으로 갈 수 있는 부산의 명소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감천문화마을이 있었다. 몇 번이나 부산에 왔지만 가깝다는 이유로 부산의 보석 같은 곳들을 찾아볼 생각은 안 하고 오로지 용궁사나 남포동, 서면, 태종대와 같은 장소밖에 머리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장소도 있었지. 당장에 다음 일정을 감천문화마을로 결정했다. 즉석 여행이었다.

 감천문화마을은 산등성이에 있다. 그래서 버스를 탈 때도 짜릿한 느낌을 맛봐야 한다. 지금은 여름 초입이니 괜찮지만, 만약 겨울이나 비가 많이 오는 때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항상 생각하지만, 부산의 버스 기사님들은 특히 더 대단하다고 느낀다. 부산의 이미지와 다르게 친절하신 버스 기사님들도 기억에 참 남았다.

 그렇게 감천문화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감천문화마을은 넓고, 나의 체력은 한정되어 있다. 지도가 필요했다. 바로 오른쪽의 관광안내소에 들어갔다. 관광안내소에는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지도를 2천 원에 판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면 그냥 지도만 실려있는 것도 있을까 해서 들어갔는데 안내원의 말이 귀에 거슬린다. '저희 마을은 지도가 없으면 제대로 구경을 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진 이해한다. '지도를 사지 않으면 중국인 관광객에게 떠밀려 제대로 관광도 못 하고 나오게 됩니다'. 기분이 나쁘다. 물론 지도가 없으면 모든 장소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관광할 수 있을 텐데, 그녀의 말은 나를 비롯한 관광객을 지도 없이는 제대로 관광도 못 하는 사람으로 낮춰보는 것 같아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이 말은 감천문화마을을 나서며 '단체관광객은 지도를 사야 입장할 수 있다'는 문구와 함께 상당한 찝찝함을 남겼다. 문화마을 내에 '기부 금액은 오롯이 노인들에게 사용된다'는 말과 함께 기부통이 있던데, 차라리 모든 출입객에게 입장료를 받고 지도를 제공하여 그 일부를 기부하는 형태로 운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감천문화마을의 상징은 물고기인지, 물고기 모양의 전시물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다. 간판 대용이기도 한 듯하다.

 여하튼 찜찜했던 지도 사건(?)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감천문화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첫인상은 '김광석 거리'였다. (시기적으로는 감천문화마을이 먼저 생기기는 했지만, 내 경험 안에서는 김광석 거리가 먼저였으니 이 부분은 넘어가자) 감천문화마을이라는 하나의 프로젝트 하에, 예술인과 기타 재능 기부자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고, 빈집을 가게로 개조하여 오밀조밀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파는 곳은 물론이거니와, 머리 끈이나 귀걸이를 파는 곳도 있었다. 그렇지만 감천문화마을은 곳곳에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 여타 '만들어진 예술 마을' - 물론 감천문화마을 또한 만들어진 마을이긴 하지만 - 과의 차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빈 가정집을 개조하여 설치미술의 장으로 변화시킨 것도 확실히 새로웠다. 또한 이들 장소가 미로처럼 숨겨져 있어 이들 공간을 찾아다니는 게, 마치 미로찾기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천덕수라는 우물과 그 스토리 텔링은 없느니만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여기도 일단은 사람이 사는 동네이다. 그래서 동네를 돌아보면 현지인(이라고 쓰니 이상하지만, 따로 대체할 말이 없으니 넘어간다)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보인다. 정자에 앉아 신나게 이야기는 하는 그들의 모습은 관광지와 주거 공간이 복합된 감천문화마을의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함을 남긴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관광 시간은 일몰 전으로 제한되어 있으니 주의하자.

 그렇게 신나게 마을을 둘러본 뒤 1호선을 타니, 감천문화마을에 가기로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노선도 위에 새로운 볼거리가 있었다. 다음은 을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