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 동물원
2017.12.9.│지도
인터넷에서 신기한 돈가스를 봤다. 이름도 특이했다. 얼룩말 돈까스란다. 호기심이 동했는데 마침 또 위치가 대구였다. 좋다 싶었는데 일단은 반월당이지만 경대병원에 더 가깝다. 그래서 마음만 있지 좀처럼 가질 못하다가 이번에 가게 되었다.
가게는 지하상가의 가게가 다 그렇듯이 분식집에 가까운 인테리어였다. 상호의 콘셉트를 살리듯이 벽에는 여행 사진이 몇 걸려있고, 동물 인형도 구석에 살포시 놓여 있었다. 청테이프 색의 간판과 가게 외부만 조금 신경 써줬어도 나름대로 괜찮을 법했는데 밖과 안의 부조화가 너무나 아쉽다. 심지어 식기도 나쁘지 않은데.
인테리어는 아쉬웠지만, 음식은 맛있었다. 빠리 '동물원'이라는 콘셉트를 메뉴에서 이어간 것도 좋았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메뉴가 전부 동물 이름이었다. 물론 이름만으로는 도대체 어떤 음식인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메뉴판에는 간단한 설명이 있었고, 옆에는 직접 그리신 듯한 일러스트도 있어서 이해가 쉬웠다. 일러스트를 보니 메뉴명뿐 아니라 음식 자체가 동물의 특징을 살린 듯하다. 가격은 물론 지하상가가 그렇듯이 저렴한 편이다.
얼룩말 돈까스는 얼룩말의 특징인 줄무늬를 살려 소스를 끼얹었다. 짙은 갈색 소스(메뉴판을 따르자면 블랙 소스)는 데리야끼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달지 않고, 시판 돈가스 소스라고 하기에는 베이스가 된 토마토 페이스트의 신맛이 없었다. 조금 더 진하고 쓴맛도 살짝 나는 듯하다. 화이트소스는 먹는 데에 너무 집중한지라 나중에 얼마 남지 않은 소스만 먹어서 확신은 안 서는데 생크림이 들어간 것 같았다. 고기도 저렴한 가격에 너무 적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에 그쳤다.
밥은 찰기가 있진 않고 그저 보통 밥이었다. 그렇지만 샐러드는 다른 분식집이 그렇듯이 양배추만 있는 게 아니라 양배추에 상추와 양파를 넣었다. 위에 콘 후레이크도 있다. 드레싱 또한 마요네즈가 듬뿍 들어가서 묵직하고 느끼한 다른 분식집의 것과는 달랐다. 조금 가벼운, 그러나 요거트나 과일 드레싱 같은 상큼함은 아니었는데 정체를 모르겠다.
앵무새 돈까스는 토마토소스에 허브(?)를 넣었다. 또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다른 치즈 돈가스와는 다르게 돈가스 위에 치즈를 얹고 소스를 끼얹었다. 이제는 보편화된 건 파슬리도 뿌려 나름의 고급스러움을 살렸다. 그렇지만 토마토소스임에도 강하다. 맵다. 물론 내가 매운 걸 못 먹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면 조금 매콤한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까 싶다.
이름만이 아니라 음식 플레이팅 또한 동물 콘셉트에 충실하며, 비주얼만이 아니라 맛도 함께 챙긴 음식점이었다. 그렇지만 위치상의 난점으로 손님이 많지 않은 게 아쉽다. 신기한 메뉴명 때문에 나중에 한 번 더 시간 내어 찾아가 보고 싶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