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의 (2)
2019.1.
실제로 가면 별것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 가서 확인해보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인질로 잡힌 사람의 운명이란 그런 거다. 목적지는 서쪽 끝에 있어 접근성이 나빠 한번 간 이후로는 전혀 가지 않은 아라시야마. 일본은 겨울이 포근하지마는 추적추적 비가 와서 그런지 옆에 보이는 가츠라 강이 마음을 시리게 한다.
미피 사쿠라 키친은 상설매장으로, 지난해 10월 초 오픈했다. 콘셉트는 일본풍으로, 교토의 전통공예품과 콜라보레이션한 주방용품(젓가락과 젓가락 받침이 많았다), 잡화 등을 판매한다. 보통 미피 상품은 키디랜드 내의 미피스타일에서 구입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화류는 없다. 주방용품을 산다면 들를 법하지만, 팬시를 구입한다면 굳이 여기에 들를 이유는 없다. 홈페이지에 판매 상품 리스트가 자세하게 실려 있으니 미리 홈페이지로 예습하는 게 좋다. 한편 미피 사쿠라 '키친'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쪽에선 빵도 팔고 있는데, 역시 캐릭터가 붙어서인가 가격은 썩 싸진 않다.
미피 사쿠라 키친에서 빵 2개, 이온 몰 내 슈퍼마켓에서 샌드위치와 요츠바 우유를 샀다. 요츠바 우유는 500mL에 192엔으로 비싼 편이지만, 일본에 온 지가 벌써 몇 번인데 아직도 홋카이도를 가 보지 않아 덜컥 사 버렸다. 우유 팩을 보니 홋카이도 토카치산 - 처음 들어보는 지명인데 유제품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 에 비유전자조작 사료를 사용한 생산자에게서만 만들어진 우유라 하는데, 그래서 비싼가 싶다. 하지만 목이 말라 벌컥벌컥 우유를 들이키다 보니 정작 우유 맛을 음미할 때가 되니 우유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미피 빵은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인지 두 개 다 결이 억세다. 당근 빵에는 마요네즈 맛이 우세한 계란 샐러드가 들어가 있는데, 조직이 치밀해 뻑뻑하다. 큐브는 짭조름한데, 빵이 부드럽지 않아 식감이 좋진 않다.
* 교토역 → 이바라키역
이날은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를 보러 갈 예정이라, JR 이바라키 역에서 만나기로 친구와 약속했다. 그런데 이틀 연속 지각을 했기에 이번엔 아예 아슬아슬하게 도착하지 말고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도록 출발하자 싶어 서둘러 열차를 탔다. 그런데 노선 점검으로 잘 가던 열차가 중간중간 멈춰서 20분이나 지연되었고, 결국은 약속보다 10분 늦게 이바라키 역에 도착했다. 본의는 아니지만 3일 연속 지각이라니. 하지만 열차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와중에도 특급열차는 아무 점검 없이 선로를 통과해서 괜히 미웠다.
* 이바라키 카스가오카 교회(통칭 빛의 교회) HP 지도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으로 유명한 빛의 교회는 JR 이바라키 역에서 긴테츠 버스를 타고 접근해야 하는 곳이다. 내부는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으며, 일요일 혹은 토요일에만 예약이 열린다. 거기다 관람 시간도 1시 30분부터 4시까지 제한되어있어 까다롭다. 입장료는 없을 줄 알았는데 300엔이나 받는다.
아름다움보다 먼저 느낀 건 냄새였다. 건물에 들어서니 간장 냄새 같은 짠 냄새가 확 풍긴다. 건물에 쓰인 나무 냄새도 아니고, 콘크리트 냄새도 아닌 이 냄새가 어디서 나는 건지를 모르겠다. 다음에 보인 건 정련된 아름다움을 뽐내는 건물 내부였다. 건물은 예배당과 교회 홀로 나누어져 있으며, 채광을 이용한 빛의 십자가가 있는 쪽이 예배당이다. 하지만 건물은 전부 콘크리트로 되어있는데 손으로 쓸어보니 부드럽다. 콘크리트에 방수도포를 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될 수 있나 싶다. 질감은 시각에도 영향을 주어 회색이지만 차갑지 않다. 십자 모양으로 개방된 유리에서는 햇빛이 들어와 네 꼭지에서 방사형으로 퍼지는데, 이게 건물에 입체감을 준다. 사진으로 찍으면 빛이 튀니 노출을 낮추어 찍어야 한다.
교회 홀은 소박하다. 왼쪽에 긴 종이가 매달려있어 읽어보니 십계명이었다. 뒤에 있는 의자에는 건축 시작부터 찍은 사진을 모은 사진집이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게 아쉬워서 다 보긴 했는데 건축에 조예가 없으니 과정을 찍은 사진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맨 앞엔 성경이 놓여있는데, 직원(?) - 이라 적어야 할지 신도(?)라 적어야 할지 애매하다 - 분께서 한국어판도 있다면서 친히 한국 성경도 가져와 주셨다. 글자가 일본 성경보다 작아서 보기는 힘들었다.
케이한 기요미즈고조역에서 다리를 건너올 때 발견하고 와봐야겠다 싶던 카페다. 일요일이라 복잡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조금 기다리니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는 운이 좋게도 카모 강이 보이는 창가다. 1999년에 개업했다고는 하지만 인테리어는 지금 봐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창업자분이 애플에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을 맡으셨다는데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2층에는 여러 가지 잡화도 팔고 있다.
취급하는 음료 및 음식의 종류는 많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특히 내가 시킨 두유 바나나주스는 비쌀 뿐만 아니라 바나나의 뻑뻑한 느낌이 있어 음료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좌석 간격이 좁지 않으며 편안한 데다, 오래 있는 사람들이 많아 눈치가 덜 보이는 게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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