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의 (1)
2019.1.
* 1년 만의
미리 사 둔 하루카 티켓으로 바로 교토로 향했다. 일단 숙소에 먼저 들른다. 2년 전 처음 방문한 숙소였지만 함께 묵은 분들이 말을 잘 붙여 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지라 또 묵게 되었다. 호두과자라도 하나 사갈까 싶었는데, 설마 아직도 나를 기억하실까 싶어 그만두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주인분께서는 '오랜만입니다(ご無沙汰しております)'라면서 날 반겨주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하나 준비해갈까 싶었다.
빠르게 정리를 끝내고 케이한 기온시조역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 대중교통을 타기에도 애매해 걸어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기는 했는데 그래도 마음이 급했다. (알고 보니 전혀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물로 초콜릿을 준비했는데, 행여나 초콜릿이 망가질까 봐 마음껏 뛰지도 못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북적인다. 북적이는 건 카페도 마찬가지다. 아니다, 카페는 언제든 북적였던 것 같다. 카페 공화국에 살고 있어서 좌석 간격이 좁은 데다 전체적인 공간도 좁고, 어딜 가든 사람이 빽빽이 들어선 일본의 카페는 영 내 마음에 차지 않지만, 이야기를 해야 하니 근처에 있는 도토루에 간다. 교토 기온시조 오오하시점은 전망은 좋을지 모르지만, 안쪽 좌석에 있으면 그런 건 전혀 느낄 수 없다. 이야기하다 보니 9시가 되었는데, 층을 하나 닫아버린다. 밑에 갈까 하다가 내일도 만나야 하니 이만 헤어지기로 한다.
아침으로 먹을 걸 사 두지 않았었다. 다행히도 주변에는 아침에 하는 음식점이 몇 있었고, 그중 제일 가까운 로리머 교토에 갔다. 예보에는 없던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려 빠른 걸음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아침 메뉴는 두 가지로, 국과 반찬 세 개인 것과 반찬 다섯 개가 있으며, 가격은 각각 1500엔, 2000엔이다. 가격은 조금 비싼데, 이왕 여행인 거 아낌없이 돈을 쓰자 싶다.
가게에 들어선 시각은 대강 7시 40~50분쯤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도 이미 한 팀이 와서 앉아있었다. 음식은 아직 서빙되지 않은 상태로, 직원분은 그쪽 음식부터 했다. 그래서 내가 요리를 받기까지의 시간은 1.5배, 체감상으로는 15분 정도 걸린 게 아닌가 싶다. 직원이 전부 출근하지도 않았고, 생선 외에는 미리 만들어 둔 음식을 꺼낼 뿐이지만 아름답게 얹는 데에 굉장히 성을 쏟으셔서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다.
음식은 영어로 설명해 주시는데 반만 알아들었다. 특이했던 건 계란으로, 단순한 계란말이가 아니라 오븐에서 조리해 푸딩 같은 식감을 낸다. 반찬이면서 디저트다. 오른쪽은 야채 절임인데, 쏘는 듯한 맛이라 생각보다 손이 안 갔다. 그런데도 이 가게가 마음에 든 건 생선 때문이다. 생선은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미소로 마리네이드 된 생선을 골랐다. 생선 이름도 말씀해주셨는데 어려워서 잊어버렸다. 부드러우면서 짜지 않았다. 밥도 맛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렇진 않았다. 일본 음식에서 기대하는 밥의 찰기는 없이 평범하다.
과연 가격만큼의 가치는 하는지에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침을 먹으니 든든하다. 이제 가방을 열고 돈을 내려고 하는데, 아뿔싸. 지갑을 안 가져왔다. 직원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숙소까지 갔다 왔다. 이번 일로 교훈을 하나 얻었네요, 라고 직원분이 말씀하셨다. 정말 그랬다.
* 루브르 미술관전 초상예술 - 인간은 사람을 어떻게 표현해왔는가 HP 지도
아침밥을 먹는 데 그렇게나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9시 30분까지 오사카 시립 미술관에서 친구와 약속을 잡았는데 말이다. 거기다가 지갑도 잊어버려 숙소에 다시 갔다 왔으니 지각은 확정이다. 평소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라 자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결국 미술관에는 30분 늦게 도착했다. 음식점에서 기다리다 보니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아 약속 시각을 미루자고 문자를 보냈는데, 위에서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력도 허무하게 문자가 전혀 가지 않았다고 한다. 와이파이 대여도 이제 귀찮아서 안 하는데, 이럴 때만큼은 빌려둘 걸 싶기도 하다.
전시는 영원을 의도했던 고대 이집트로부터 기억의 수단, 권력의 도구, 유행 및 기법의 표현으로 초상의 의미 변화에 따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3개의 테마로 나누어 작품을 전시했다. 작품 수는 112점, 회화만이 아니라 조각도 많다. 예가 많으니 주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팸플릿에 필기하려고 하니 촬영만이 아니라 볼펜도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불편했다. 작품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거니 이해는 한다. 그런데, 작품 손상이라고 하면 미술관의 조명이 훨씬 더 신경 쓰였다. 보통 미술관의 조명은 어슴푸레하여 작품의 손상을 최소화하는데, 이 전시회는 너무 밝았다. 거기다가 제대로 못 본 건지도 모르겠지만 상당수의 회화가 유리 등으로 보호가 잘 안되어 - 유리가 투명해 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 있고, 특히 조각의 경우에는 펜스 외엔 아무런 조치가 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익숙하다 싶은 작품에 가서 설명을 읽어보면 대부분 '이후에 공방에서 제작한 레플리카 중 한 점', '실제의 1/2 크기로 공방이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아무래도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작품은 많이 제공하되, 유명한 작품의 경우에는 진품이 아닌 레플리카를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회화가 조명에 비춘 것을 살펴보니 붓 자국이 없이 매끈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진품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괜히 이런 사실이 마음을 찝찝하게 해서 뒷맛이 좋지 않았다.
나오려고 하니 위에도 상설전을 하고 있어서 츠다 아이조(辻愛造)의 쇼와시대 풍경화도 봤는데, 특징은 따로 없고 우리나라의 근대 화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 텐노지 → 우메다
우메다로 가기 위해 미도스지선을 탄다. 중간에 스파월드가 있어 동선이 계속 꼬였다. 가는 길은 낯설었다. 오사카 시립 미술관이 있는 텐노지는 신이마미야-동물원 앞 일대로 치안이 좋지 않다고 누누이 들어와서 의식적으로 피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낮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괜찮은 곳이었다. 하긴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말이다. 신세카이, 츠텐가쿠, 텐노지의 레트로한 분위기는 도쿄 우에노의 우에노 공원-아메요코 시장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일단 밥을 먹으려고 무작정 우메다로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딱히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여하튼 어딜 갈까 헤매다 한큐 백화점 지하로 왔고, 식당가 판을 보고 있자니 야바톤이 보였다. 나고야에서 그 유명하다는 야바톤의 미소카츠를 먹지 못했기에 당장 여기로 갔다. 백화점에 따로 매장이 있지 않고 푸드코트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사람은 많고 자리는 너무 없었다. 다행히 눈치를 보다 2인석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안심은 느끼하니 등심(800엔)으로 시켰는데, 그게 로스인지 히레인지 매번 헛갈린다. 야요이켄에서도 미소카츠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미소 맛이 안 나서 원조(?) - 정확히 말하면 원조의 분점이지만 - 는 좀 더 진하려나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서 비교는 안 되고 어렴풋한 기억만으로 보았을 땐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여기가 더 진하고, 또 짠 것 같다. 그래, 안 짜면 일본 음식이 아니지. 그러면 양배추에 다른 드레싱을 얹으면 됐을 텐데, 하필 아무 생각 없이 끼얹은 소스가 또 미소 소스였다. 다행히 많이 뿌리진 않아 열심히 먹었다. 제일 중요한 돈가스는 금방이라도 먹고 싶은 마음에 덥석 입에 넣었는데 너무 뜨거워서 식혀 먹어야 했다. 하지만 금방 요리했다는 것의 증거라 불만은 없었다. 고기는 두툼했다. 그렇지만 비계도 두꺼웠다. 비계가 있을 거면 고기에 골고루 퍼져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심은 조금 달랐으려나 싶다.
* 교토역으로
5시인데 벌써 해가 진다. 벌써 하루가 끝난다는 느낌에 울적하다.
미술관을 한번 돌았더니 체력이 다 소진되어 일행이랑 일찍 헤어졌다. 숙소에 돌아가기 전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아 소바집에 갔다. 여태까지 소바를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데다, 애초에 소바를 먹은 적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하물며 일본에서는 소바를 먹은 적도 없어서 일부러 주변의 맛있다는 집을 찾아놓았다. 주저하며 문을 여니 직원분이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2층도 있었는데 혼자라니 1층으로 안내받았다. 메뉴는 읽을 수는 있는데 뭘 골라야 할지 도통 몰라 추천받은 쥬와리(十割)소바를 시켰다. 쥬와리? 분명히 여행 오기 전에 소바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다 까먹어서 다시 찾았다. 백과사전 왈 쥬와리소바(十割蕎麦)는 메밀가루를 사용한 비율을 나타내며, 메밀가루 100%로 만든 거라고 한다. 그 덕인지 소바를 먹으니 메밀 향이 입안에 퍼진다. 평소 메밀 하면 찰기는 없고 뚝뚝 끊어지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씹는 맛도 있어서 쯔유 없이도 몇 번 먹었다.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이 소바만 먹으니 역시 맛의 재미는 없다. 하지만 다 먹고 가게를 나온다. 계산하려다 보니 입구 근처에 소바를 만드는 곳이 통유리로 보인다. 만약 웨이팅이 있다면 덜 심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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