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하게, 그러나 즐겁게 (3)
2019.1.
* 3초메의 작은 빵집 지도
이번에 묵은 이마노 호스텔은 접근성과 가격 말고는 모든 게 최악이었지만 이 빵집이 있어 그나마 행복했다. 일단 일찍부터 움직이는 나에게 8시부터 연다는 게 큰 구원이었고,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갔는데도 종류가 많았다. 하나하나의 크기는 작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다양한 종류의 빵을 맛볼 수 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순서대로 시오 프랑스, 바게티느. 시오 프랑스는 쉽게 말해 '시오빵(소금빵)'이다. 속은 크루아상처럼 결이 살아있으면서 텅 비었는데, 소금과 버터로 맛을 내어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하다. 기본적이고 흔한 맛이지만 자꾸 먹고 싶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 후 수소문(?)해보니 교동 과자점에도 시오빵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이 빵이 더 맛있다. 맛은 대동소이하겠지만 금방 만든 빵인 게 큰 것 같다. 한편 바게티느는 이름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듯 바게트에 이런저런 재료를 얹은 빵이다. 맛있었지만 역시 바게트라는 거 하나만으로도 먹기 힘들다.
전시회가 열리는 모리 미술관은 롯폰기 힐즈 타워 안에 있는데, 전망대가 있는 52층에서 한층 더 올라간 53층이라는 어마어마한 높이에 있는 미술관이다. 높이만이 아니라 최종 입장도 21시 30분까지인 것도 눈에 띈다. 처음 들어가면 돔 형태의 입구가 있는데, 도대체 어디로 올라가야 할지 몰라 헤맸다.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건물은 티켓이 없으면 들어갈 수조차 없으며 구석구석 배치된 직원을 보자니 과연 롯폰기다(즉, 부티 난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때 개최된 전시회는 롯폰기힐즈/모리 미술관 15주년 기념전으로, '카타스트로피와 미술의 힘'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홈페이지를 보면 기획전 말고도 여러 가지 작은 전시회가 있는데, 모두가 53층에서 이뤄진다. 입구만 보면 일본이 항상 그렇듯이 돈만 뜯어내고 실상은 별거 없는 게 아닌가 싶지만, 직접 돌아보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상당히 넓다. 작품의 수도 꽤 있으며 주제에서 연상할 수 있는 쉬운 것이 대부분이다. 이건 도대체 뭔가 싶은 작품도 많지만 꿈보다 해몽이라고 의미에 방점을 찍고 스스로를 대단한 미술로 끌어올린다는 느낌의 작품도 적지 않았다. 동선은 지도를 보았을 때 원형으로 구성된 것 같다.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 재앙이라고 쓰면 될 텐데 일본은 참 영어를 그대로 쓰는 걸 좋아한다 싶다. 전시회는 두 섹션으로 나뉘는데, 그중 첫 번째 섹션은 '참사의 표현'이다. 참사의 표현은 기록, 재현, 상상으로 이뤄지는데 일본인 작가들의 작품 소재는 역시나 3.11.동일본 대지진과 고베 대지진이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심상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피해가 현재진행 중이라서가 아닌가 싶다. 위 작품은 고베 대지진 당시의 스케치. 거의 매일을 이렇게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사실 그림 말고는 달리 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작품이란 무릇 전시되는 공간에도 영향을 받는다. 아마 사진이라는 매체의 미화도 한몫할 것이다. 이 작품은 웹페이지를 보고 기대했었는데, 막상 보니 재료의 특성이 바로 보이게 되니 실망스러웠다. 규모에 놀라기에는 이미 덩치로 압도하는 작품이 범람하는 요즘이다.
<흔적 #1 케곤 폭포 / 타케다 신페이>. 이 작품. 별거 없어 보이지만, 동일본대지진 후 해당 장소의 흙을 이용해 방사선으로 감광시킨 포토그램(사진의 특수기법.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감광지와 광원 사이에 투명 ∙ 반투명 ∙ 불투명한 물체를 놓고 노광(露光)시켜 추상적인 영상을 구성하는 사진. 출처 : 미술대사전) 연작 '흔적(痕)'이다. 아마도 작가인 타케다 신페이(武田慎平)의 출생지가 후쿠시마현인 것이 영향을 끼친 듯하다. 물론 현대의 미술은 결과만이 전부가 아니라 과정이나 의미로도 평가받을 수 있고 의미와 방법이 독특하긴 하지만 역시 안전을 생각하면 이런 행위는 무모한 게 아닌가 싶다.
<블랙 컬러 타이머 / 히라카와 코타>. 검은 원반처럼 생긴 108개의 전파시계에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에 종사한 작업원의 초상이 검은 안료로 그려져 있다.
두 번째 섹션은 파괴에서 창조를 만들어내는 미술의 힘을 다룬다. 미래를 품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프로젝트 결과물도 걸려 있다.
조르주 루스의 작품. 2013년 4월에 일본에 와서 동일본대지진으로 철거 예정이었던 미야기현의 카페 내부를 재구축했던 걸 재현했다. 즉 평면으로 보이지만 공간이다. 특정 시점에서 볼 때만 별이 떠오르는데, 별은 나츠메 소세키 등의 하이쿠에서 착상을 얻었으며, 청-백으로 밤과 낮, 부정과 긍정의 위치로 세웠다고 한다.
이 역시 의미로 작품을 출전한 케이스. 제목에 현재 장소와 과거 장소를 함께 써놓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된다니.
굳이 이런 포즈, 이런 이미지를 썼어야 할까? 이런 작품을 보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든다.
<색을 덧입히는 페인팅(난민선) / 오노 요코>. 포스터에 실린 작품이다. 의도는 난민선을 포함한 흰 공간에 평화에 대한 기원을 글로 남기는 거지만 실제로는 방명록과 비슷하게 된다.
모리 미술관보다 한층 아래에 있는 전망대다. 옥외전망대도 존재하지만, 추가 요금이 있다. 모리 미술관 및 전망대 표는 한국에서 준비해갔는데, 죄다 통합권이라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애초부터 통합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낮에는 미술관을 보고, 오후에 전망대를 보면 딱 좋겠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부터 검표하기 때문에 일단 미술관에 오면 전망대도 다 보고 가야 한다. 원래는 밤에 와서 야경을 보려고 했는데 아쉬운 대로 나가기 전에 전망대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유리인 데다 크기도 커 전망이 시원시원하다. 낮이지만 붉은색의 도쿄 타워 덕분에 즐거움이 있다. 그렇지만 역시 마음 한구석으로는 밤에 오면 더 멋지겠단 생각이 든다.
롯폰기 힐즈 타워 내에 카페가 있는데, 그 옆의 작은 전시 공간에 '헤이세이 전'을 하고 있었다. 전시회지만 작품은 하나밖에 없는데, 전선을 얽어 헤이세이를 풍미한 키워드를 달아놓았다. 왜 새삼스럽게 헤이세이 전인가 싶었는데 올해 4월에 연호가 바뀌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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