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19. 4. 6. 16:09
작성자
달콤 씁쓸

경주 동궁원(동궁 식물원, 경주 버드파크)

2019.2.


동상이몽 

 친구가 경주 동궁원에 가자고 운을 띄웠다. 언젠가부터 보문호를 돌면 나오는 유리온실. 작년에 비슷한 느낌의 창경궁 유리온실을 다녀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궁금했기에 제안이 반가웠다. 당장 기차표도 예약했다. 약속 시각에 제대로 나온 적이 거의 없기에 걱정이 되어 조금 늦게 출발할까도 물었지만 괜찮단다. 하지만 역시나 출발 당일에도 지각하고 결국은 기차표를 취소하고 고속버스를 탔다. 다행히도 버스 편이 많아 시간을 많이 낭비하진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하고 있자니 친구가 말하는 경주 동궁원은 사실 동궁원 안에 있는 경주 버드파크라는 걸 알았다. 난 동궁 식물원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결국은 두 군데 모두 보기로 했다. 

 나지막한 스카이라인. 오랜만에 본다. 최근엔 기차만 이용해서 고속버스터미널이 되레 낯설다. 큰길을 따라 걸으니 인터넷에서 보았던 말차먹은 첨성대로 유명한 카페(리초야)와 첨성대 초콜릿 가게가 보인다. 그렇지만 점심부터 먹어야 했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가 궁금했지만, 계획에는 없었던 황리단길에 들어섰다. 경주의 조용한 느낌이 없이 그야말로 관광지화된 도로였다. 평일이라 쓰레기 수거차나 공사 차량 등으로 지나다니긴 불편했는데 사람 사는 곳의 냄새가 나서 되려 좋았다. 그 와중에 보인 배리삼릉공원이란 흰 페인트의 기념품 가게가 눈에 띈다. 신나서 찍고 있으려니 옆에 공사 차량이 들어와서 그냥 돌아설까 싶었는데 운전석에 앉은 아저씨께서 선뜻 후진해 주셔서 깨끗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작 가게는 여타 기념품 가게에서도 파는 물건이 많았고 특색있다 싶은 건 딱히 나에게 필요가 없어 구경만 하고 나왔다. 맨 앞에 걸린 식물 패턴의 에코백은 갖고 싶었지만, 그렇지만 가지고 있는 에코백이 좀 있었기 때문에 그냥 보고만 왔다. 

 규모가 큰 기념품 가게. 

경주원조콩국  지도

 여기까지 도보로 걸어왔다. 30분 정도 걸었지만, 2월 말이라 그런지 날씨가 슬슬 풀리기 시작해서 힘들진 않았다. 굳이 힘들게 걸으면서까지 이곳에 와야 하는가 싶지만, 경주에서 가본 음식점이 다 그만그만해서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었다. 

 거의 관성적으로 냉우무콩국(7000원)을 주문했다. 콩국은 진하나 우무가 물속에 오래 있었는지 탱탱하지 않고 흐물흐물 끊어진다. 찬으로 나온 무말랭이도 삭고 오래되었는지 오독오독 씹히는 게 덜하다. 물은 수정과에서 당만 뺀 맛. 우뭇가사리에 홀려 주문하지 않았던 따뜻한 콩국 1번 세트 - 검은깨+검은콩+꿀+찹쌀도너츠(6000원) 조합이 생각 외로 정말 맛있었다. 고소함과 달콤함 사이에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최고다. 과연 메뉴판 제일 위에 걸어놓은 메뉴답다. 

 점심보다는 간식에 가까운 식사를 마친 후 버스를 타러 다시 대로변까지 걷는다. 천마총에 나오는 천마가 역동적이다. 예전에는 못 본 것 같다.

 경주의 여유롭고 평온한 분위기가 정말로 좋다. 

경주 버드파크  HP  지도  

 경주 동궁원과 경주 버드파크는 동궁과 월지와 관련된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착안한 문화시설이다. 이 둘은 서로 붙어있는데, 경주 버드파크는 민자 시설이라 입장권이 식물원의 4배 가까이 된다. (17000원) 만약 버드파크만 갈 거라면 인터넷에서 티켓을 따로 사서(13400원) 들어가는 게 훨씬 저렴하다. 두 곳 다 가려면 통합권을 사는 게 낫다. 당시엔 경주 동궁원의 입장료가 4000원이라 몇백 원이나마 저렴했는데, 5000원으로 오른 지금은 오히려 비싸진다. 

 동물원이라 하면 방치되거나 제대로 관리를 못 받는 경우를 많이 봐왔고, 관리가 잘 되었다고 해도 동물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가둔다는 것이 마음이 쓰여서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동물원에 가지 않는다. 수족관도 마찬가지다. 여기는 실로 오랜만에 오는 동물원이다. 여전히 신경은 쓰이지만, 환경부 지정 생물 다양성 관리기관이라니 조금 관리가 잘 되고 있겠거니 싶다. 

 이름이 버드파크라 새만 있을 것 같았는데 파충류나 기타 동물들도 조금씩 있다. 그런데 새는 넓은 공간에서 쾌적하게 관리가 되고 있음에 반해 다른 동물들은 좁은 우리 안에 있어서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좋진 않았다. 특히 수족관은 너무 탁했는데, 유리가 오래돼 흐려진 건지 아니면 관리가 소홀한 건지는 모르겠다. 겨울이라 그런지 홈페이지나 팸플릿에는 나와 있는 동물들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새는 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색이 화려한 앵무새가 많은데, 안으로 들어가 먹이를 주며 직접 만질 수도 있다. 물론 나는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친구가 하고 싶어 해서 사료 - 사료는 따로 안 팔고 입구에 있는 기념품샵에서 어린이 스탬프 북에 끼워 판다 - 와 함께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지만 새 특성상 눈에 초점이 없는 데다 일부 우리에 한해서는 그 크기도 크니 혹여 나를 찌를까 봐 정말 무서웠다. (물론 관리하시는 분은 계신다) 무사히 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동궁식물원  HP  지도  

 버드파크와 마찬가지로 유리로 되어있는 동궁식물원은 채광이 좋고, 열대지방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아니나 다를까 팸플릿을 보니 아열대 식물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외적으로는 신라 시대 한옥 구조를 재현하여 정겨운 느낌도 든다. 사실 신라 시대 한옥은 모르지만 낯설진 않다. 메인 건물은 1관과 2관인데, 특이하게도 2관부터 입장한다. 키가 큰 식물들도 많이 있는데, 데크가 있어 위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다. 담력을 시험할 수 있도록 유리로 된 부분도 있다. 

아눅  지도

 왠지 헤어지기 아쉬워 동대구 터미널에서 가까운 아눅에 간다. 아눅베이커스와는 다르게 빵이 많이 없다. 차는 타바론 브랜드를 사용하는데, 그중 크림슨 펀치(6500원)를 주문했다. 과일 차라 따뜻한 물로 우려내니 신맛이 도드라진다. 그래도 친구가 사준 말차쇼콜라무스랑 먹으니 조금 낫다. 역시 무스는 맛있다. 인테리어는 아눅베이커스와는 다르게 철제라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