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문화마을, 오후의 홍차
2019.8.
스타벅스 부산역점 지도 : 샌드 비치 크림 프라푸치노 6800
해외에 사는 친구가 부산에 온다길래 안내해줄 겸 부산에 놀러 갔다. 의욕만 넘쳐서 9시에 보자고 했는데 물어보니 아침을 안 먹었대서 부산역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부산 한정 음료인 샌드 비치 크림 프라푸치노를 마셨다. 가게도, 좌석 간격도 좁은데다 반지하라 음습한 느낌이 든다. 그나마 여름이라 아침부터 햇빛이 들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한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음료는 블랙티 파우더에 아몬드 초콜릿 토핑이 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홍보 사진이랑은 달랐고 달지 않고 고소한 맛이다. 그렇지만 특별하게 맛있는 것도 아니고 궁금증도 해소했으니 다시 불매운동을 한다.
해외에서 일부러 부산까지 왔는데 어딜 가야 좋을까 싶다. 뭔가 볼거리가 있어야 좋고 그런 점에선 태종대나 해동용궁사가 딱인데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에 힘들고 계절도 생각해서 가까운 감천문화마을에 갔다. 역에서 가깝기도 했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 기사님의 기막힌 운전실력에 감탄하며 작은 마을버스로 굽이굽이 마을로 올라간다.
3년 만에 온 감천문화마을이지만 크게 바뀐 건 없었다. 요즘에는 부산의 마추픽추라고 불리는 것도 같지만 나는 우리나라만의 장소를 외국의 어느 것에 빗대어 표현해 전혀 다른 차원의 두 장소를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영 못마땅하다. 감천문화마을은 감천문화마을대로, 마추픽추는 또 마추픽추대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감천문화마을은 아기자기함으로 눈길을 끄는 장소고 조성된 장소인가 싶기도 하지만 6.25 전쟁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살아온 터전이기 때문에 절로 숙연해진다. 그런 높다란 마을에 지역 예술인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감천문화마을로 또다시 재생시켜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게 만든 것에 또다시 대단함을 느낀다. 마을은 바다며 정박한 배들이 한가득 보일 정도로 높이 있지만, 더위는 고도와 상관없이 평등했다.
처음 감천문화마을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지하철을 타다 차량 내 홍보 포스터만 보고 무작정 온 곳인데 생각보다 더 좋았다. 그래서 친구를 자신 있게 데려갔다. 마을 입구에는 관광안내소가 있지만, 팸플릿(지도)은 돈을 주고 사야 해서 그냥 지나쳤다. 감에 맡기고 큰 길가만 죽 걸었는데 추억이라 더 아름다웠을 뿐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진 않았다. 괜히 추천했나 싶어 초조해졌다. 오는 데까지 실컷 고생했는데 정작 얼마 못 보고 내려가자니 미안했다. 하마터면 찾아본 도넛 가게도 휴무였다.
돌아가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천운인지 어떤 사람이 가게 주인분께 평화의 집 위치를 묻는다. 감사합니다. 요령 좋게 주워듣고는 다시 마을 끝으로 갔다. 평화의 집 옆에는 골목길이 있었는데, 그걸 쭉 따라가자니 마을 지도에 표시돼있던 작품 전시 공간이 가득했다. 지난번에도 지도를 안 샀기 때문에 여긴 처음이다. 집에 와서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여전히 못 본 작품이 있었지만 이날 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골목길을 굽이굽이 따라가는 건 정겹다. 도중에 다큐멘터리 3일(586회 : 지성이면 감천 - 부산 감천문화마을 72시간, 37:43부터)에서 보았던 할머니도 뵈어서 인사도 드렸다. 지나친 기대로 가면 실망하겠지만 흔한 프랜차이즈 없이 - 프랜차이즈 업체가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어서라고 한다(같은 다큐멘터리, 26:08부터) - 주민들의 손으로 일궈진 마을이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오래 갔으면!
할매가야밀면 지도 : 밀면(소) 6000, 비빔면(소) 6000
다음엔 남포동에 갔다. 어찌나 더운지 광복로엔 사람들이 그늘로 다니고 있다. 자주 다니던 할매가야밀면은 나날이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2층으로 가라고 해서 갔는데 어찌나 바쁜지 따로 안내해 주는 사람도 없고 적당히 자리를 골라 앉았다. 그런데 일하시는 분도 정신이 없으신지 주문도 제대로 받지 못하신다. 5번 넘게 불렀는데도 듣지 못하거나 알았다고 해 놓고선 주문도 받으러 오지 않았다. 참다못해 직접 직원에게 찾아가 주문했다. 차라리 가게를 나가면 될 일이지만 이 더운 날에 친구를 또 걷게 하자니 미안하고, 다른 가게를 찾을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불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우리보다 먼저 가족이 와서 앉아있었는데, 먼저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이 먼저 나가게 되니 화를 내며 돌아간다. 다른 사람들에겐 육수도 제때 제공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우린 음식을 늦게 받는 일은 없었지만 다른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니 다시 이 가게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친구는 밀면이 입에 맞는 듯했다. 호기롭게 비빔면을 시켜서 매웠을 텐데 다행이다.
오후의 홍차 지도 : 아이스 로얄밀크티(얼그레이) 11000, 영국식 밀크티(아이리쉬 위스키 크림) 9000
음식을 먹는다면 카페도 가야 한다. 마침 몇 달 전에 '부산만의 매력 담은 로맨틱 낭만카페 35선 선정'이란 고마운 기사 덕분에 오후의 홍차라는 카페에 가게 되었다. 가게는 4층으로 되어있는데, 1~2층은 갤러리 및 베이커리, 3층은 커피 전문, 4층은 홍차 전문 가게(오후의 홍차)다. 하지만 전망이 좋고 루프탑도 있어 그런지 홍차가 주인 곳인데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2018 부산다운 건축상에서 금상을 수상한 곳인 이곳은 통유리에 내벽은 노출콘크리트로 모던함을 살렸다. 최근의 노출 콘크리트의 경우 노출을 넘어 지저분함에 이르고 있는 요즘을 생각하면 이렇게 깔끔하게 마감된 게 다행스럽다. 반면 의자와 소품은 앤틱한 느낌이라 통일성이 떨어진다.
안 그래도 카페는 자리가 잘 비지 않는데, 주말인 데다 전망이 좋아 소위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곳이라 가게는 들어올 때부터 이미 꽉 차 있었다. 어떻게 할까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으려니 다행히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있어 무사히 앉을 수 있었다. 메뉴판을 펼치니 상상을 초월한 가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메뉴 중 밀크티가 일본식의 로얄밀크티와 영국식 밀크티로 나누어진 게 특이하긴 했지만 이걸 제외하면 다른 건 여타 티룸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가 있는 것들이었다. 인테리어에 비해 다구도 그리 특별할 게 없어서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한 것 같다. 센텀시티의 물가를 몸소 체험한 곳이다.
확실히 전망은 좋다. 밤엔 분명 더 멋질 것이다.
호토모토 부산서면점 지도 : 치킨마요 4500
센텀시티에 있는 신세계백화점에서 시간을 보내다 더베이101까지 보고 들어가는 게 원래 목표였다. 하지만 전날에 잠을 설쳐 그런지 머리가 맑지 않았고, 아침부터 신나게 걸어 다니며 더위를 온몸으로 받은 탓인가 생각보다 몸 상태가 별로였다. 분명 친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숙소에 바래다주면서 중간역인 서면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다들 배가 고프지 않아 조금만 먹을 곳을 찾다가 호토모토에 가게 되었다. 따끈따끈한 치킨마요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보였지만 애초에 배가 고프지 않았고, 마요네즈가 너무 많아서 건더기만 적당히 먹고 남겨버렸다. 남긴 양을 보니 밥 한 공기다. 괜히 죄송했다.
부산역 광장 공사와 더불어 지하철과 역사를 연결하는 곳도 대대적으로 정비한 것 같다. 지난번에 없었던 무빙워크와 신기한 벽화가 생겨있다. 이렇게 돌아갈 때도 감천문화마을을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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