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19. 11. 9. 22:49
작성자
달콤 씁쓸

F1963, 초량168계단 (2)

2019.8.


#4 F1963  HP  지도

 5층짜리 아파트, 주택, 빌라가 있는 오래된 동네. 그리 크지 않은 길에서 왼쪽엔 주차장, 오른쪽엔 창고형 매장 코스트코를 끼고 오르막을 오르면 보이는 곳. F1963은 외로운 건물이다. 고려제강의 와이어공장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장은 2008년에 생산 종료 및 설비 이전을 거쳐 2016년엔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현재는 카페, 음식점, 서점 등이 입점한 복합문화공간이 되었다. 공장은 이미 그 자리에서 벗어났지만, 공장(Factory)의 F와 처음으로 공장을 지은 해인 1963을 합성한 이름 F1963으로 여전히 공간을 지배한다. (출처:  F1963 홈페이지)

 공장을 개조한 대규모 공간은 5년쯤 전에 유행했던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은 어쭙잖은 개조로 지저분한 느낌만 남겨 공간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F1963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남길 곳과 쳐내야 할 곳을 잘 선택했다. 중앙에 있는 열린 공간은 주위를 회랑처럼 만들며, 바깥엔 대나무숲, 수련 가든 등이 있어 공간의 삭막함을 덜어낸다. 

 일단은 강릉에서 유명한 커피 체인점인 테라로사 커피에 들러 숨을 돌린다. 유명한 건 커피이지만 마시질 못해 일행에게만 권하니(일행 또한 커피를 거의 끊은 상태다) 확실히 맛있단다. 카페는 당시 공장에 있던 여러 가지 물건들을 곳곳에 두어 공간의 뿌리를 확실히 하고 있으며 강하지 않은 조명에 기조 색은 갈색이라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옆에는 공간이 트여 답답하지 않다. 

김수, <아무도 살지 않는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는 슈퍼플렉스 개인전을 하고 있었지만 크게 볼 것이 없었고 오히려 옆에 있던 석천홀에서 하는 전시가 더 재미있었다. '부산: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라는 제목의 전시는 문화도시 지정을 위한 부산문화재단의 기획전시였는데 지역색이 가득 담겼다. 흔히 부산하면 상상하는 그런 전형적 장면을 담은 작품도 있었지만,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그렇지만 부산이라서 볼 수 있는 공간을 담은 작품에서부터 명소들까지 부산의 다양한 면면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초입에 스피커를 사용한 설치작품 때문에 연신 깡깡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되려 기분이 좋다. 

 천장. 멋있다. 

 예스24 중고 서점. 플래그십 스토어라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을 넘어 책에 관련된 정보를 알리는 공간도 마련돼있다. 대중교통으로 가는 게 번거로웠기 때문에 당시엔 입지상 장사가 되려나 의아스러웠지만, 자가용을 타는 사람이 어련히 잘 찾아주겠거니 싶다.

 

#5 초량168계단  HP  지도

 부산역이 있는 도로 맞은편 저 너머엔 산이 있어 보기만 해도 아득하다. 그렇지만 사람은 더욱 끈질겨 그런 곳에서도 아득바득 살아간다. 문제는 산 윗동네로 가려면 경사 45도에 총길이가 40m가 되는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건데, 다행히도 2016년에 모노레일이 생겨 당장 이곳에 사는 주민의 삶이 윤택해지게 되었다. 덕분에 관광객도 혜택을 본다. 

 부산과 계단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이토록 까마득한 계단은 또 처음이라 도저히 용기가 안 나 모노레일을 탔다. 주변에 가게가 조금 있긴 했지만, 저녁이라 그런지 다들 슬슬 가게를 접는 느낌이고 비가 그친 후 맑게 갠 하늘만 보고 다시 내려왔다. 무료 탑승인데 주민이 아니라면 지역발전을 위해 돈을 거두어도 될 텐데 싶다.

 마무리는 168도시락국이란 가게에서 팥빙수. 집에서 얼음을 얼려 손 아프게 간 뒤, 팥과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넣던 바로 그 맛이다. 가격도 3500원으로 저렴하고 더위를 식히는 덴 딱이다. 가게는 할머니 몇 분께서 운영하시는데 마을 사업인 듯했다.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즉흥적으로 돌아다닌 것 치고 알찬 하루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