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19. 12. 27. 22:56
작성자
달콤 씁쓸

다대포 해수욕장과 바다 미술제

2019.10.


 하여튼 호기심은 문제다. 2년마다 개최되는 바다 미술제가 뭐라고 또 부산에 갔다. 매년 개최장소가 바뀌는 바다 미술제의 이번 무대는 다대포 해수욕장이다. 지하철 1호선 종점이라 그런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1 가연장 다대포점  지도

훈제오리 정식(10000원)

 12시가 조금 안 되어 다대포 해수욕장 역에 도착했다. 해수욕장을 구경하다 중간에 밥을 먹으러 오는 건 번거로우니 이른 점심을 먹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맛있게 먹을 만한 곳이 없다. 다행히 보험이 있다. 어제 찾아두었던 가연장 다대포점에 갔다. 만원으로 정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정찬이라는 상호와 달리 찬들은 백반의 그것이라기보다는 고깃집에서 자주 볼 법한, 주요리를 위해 나머지는 거드는 인상이다. 그렇다고 주요리가 강력한 것도 아니다. 딱히 손이 안 가는 음식은 없었지만, 뭔가 모르게 부족했다. 그래도 전망은 좋다. 햇빛이 한창 따갑지만, 건물 안에 있어서인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2 고우니 생태길

해수욕장에 가기 전에 고우니 생태길부터 들렀다. 갈대는 무성하진 않았지만, 가을과 함께 시작된 이유 없는 쓸쓸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갈대 하면 떠올렸던 이미지는 사실 억새인지라 바다와 함께하는 풍경은 영 낯설다. 뿌리도, 역시나 펄에 두고 있다. 갈대가 잘려 나간 거로 생각하기에는 이상하리만큼 많은 구멍에는 게가 살고 있다. 귀뚜라미도 사람이 가까이 가면 갑자기 울음을 멈추는데 펄에 사는 게들은 그런 것 따윈 아랑곳없이 구멍을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한다. 그냥 그것뿐인데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시간이 잘 간다. 

이광기, <쓰레기는 되지말자>

건너편에 보이는 구 다대소각장에는 '쓰레기는 되지 말자'라는 문구가 있다. 뭔가 싶었는데, 2019 바다 미술제 작품 중 하나였다. 

 

#3 2019 바다 미술제  HP

이승수, <어디로 가야하는가>

 드디어 다대포다. 그렇지만 광활한 공간에 황량하게 펼쳐져 있는 전시물들은 바다 미술제에 대한 기대를 가차 없이 부순다. 주제가 상심의 바다라는데, 다름 아닌 내 마음이 상심의 바다가 돼 버렸다. 아. 실망스럽다. 

손현욱, <배변의 기술>

 나름 재미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한 이 작품도 2015 바다 미술제에 출품된 작품이었다. 

 

#4 다대포 해수욕장

그보다 사람들은 바다 그 자체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들 하나씩 장비를 갖추어 열심히 게나 조개를 잡는다. 가만 보니 우리만 멀뚱히 서 있다. 부산에서 갯벌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이런 체험을 못 한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결국엔 작은 물길에서 게를 하나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는 거로 갈증을 달랬다. 

 물이 빠지고 시간이 꽤 지난 곳에는 이런 독특한 무늬도 볼 수 있었다. 하나의 작품이다. 

 갯벌도 갯벌이지만 모래가 희고 또 고왔다. 사각사각 발이 빠지는 느낌이 기분 좋다. 

 

#5 수정  지도

 사실 이젠 할 게 없었다. 올해만 벌써 네 번째이니 갈 곳이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기장이 요새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다대포에서 대중교통으로 불쑥 가기엔 힘든지라 남은 시간은 음식을 찾으러 다니기로 한다.

 우선은 가수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한 수정에 갔다. 과거에는 정란각이었던 것 같은데 이름이 바뀌었다. 음료는 꽃차, 에이드가 주이며 키오스크로 주문이 이루어진다. 음료는 맛있진 않으나 사진을 남기기에는 좋다. 그렇지만 사진을 목적으로도 굳이 찾아갈 곳은 아니다. 

 

#6 농부핏자  지도

Rucola e Prosciutto Crudo(24000원)

 저녁을 먹을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 나폴리 피자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분이 일하고 계신다는 농부핏자에 갔다. 주토피아에서 먹었던 프로슈토 루꼴라 피자를 잊을 수 없어서 갔기 때문에 주문도 당연히 프로슈토 루꼴라로 했다. 도우는 그렇게 쫄깃하진 않았고 형태가 잡혀있다. 슴슴한 토마토소스는 프로슈토의 비린내를 묻어준다. 그렇지만 주토피아 때는 못 느꼈던 비린내를 여기서 느낀 것도 그렇고, 주토피아의 먹었던 프로슈토 크루도가 워낙 인상적이라 여기 피자는 생각보다 맛있진 않았다. 

 

#7 용호동할매팥빙수단팥죽  지도

옛날 팥빙수(4000원)
단팥죽(4000원)

 역시 저녁을 먹은 다음엔 입가심이 있어야 한다. 이전부터 용호동 할매 팥빙수 단팥죽이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서면에 가게가 있었다. 가격이 저렴하면 만듦새는 어느 정도 기대를 놓게 되는데 이건 맛 또한 좋다. 옛날 팥빙수든 단팥죽이든 팥의 단맛은 누르고 구수함을 살렸다. 단팥죽을 싫어하는 일행도 연신 맛있다고 한다. 팥빙수 위에 올려진 과일은 다 먹을 때까지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 또한 시판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분점도 이럴진대 본점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하지만 역시 당분간은 부산에 오지 않을 것 같다. 너무 많이 돌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