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츠마이스터
2020.8.│지도
긴, 정말 긴 장마가 끝났다. 그렇지만 시원한 공기는 장마 때만 유효했고 그 빈자리는 잽싸게 지옥 같은 더위가 차지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 낮이지만 허기는 채워야 하니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플라츠마이스터에 들어서니 가게를 흔드는 듯한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단단하고 높은 스테인리스 의자에 앉아 메뉴를 보려 하니 의자에 앉는 것부터 쉽지 않다. 의자를 어느 정도 들어내고 내가 앉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어 내가 의자에 몸을 구겨 넣었다. 의자는 카페에서 창가에 놓는 의자같이 높으며 또 등받이도 낮다.
메뉴판을 봤다. 매주 농장에서 오는 채소를 사용해 지속가능한 절기 음식을 만든다는 문구가 마음에 든다. 시판 및 냉동 제품, 화학 첨가제 등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메뉴를 보니 다른 음식점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꽤 있다. 그렇지만 이것들을 식사, 음료 등 종류별로 분류를 해 놓지 않고 좌우로 교차 배치해 가시성은 떨어진다. 가격 표시도 없다. 음식은 재료만 설명되어 있을 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이런 곳이 드문 건 아니지만, 여기에서 파는 음식 중 생소한 게 많으니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 또, 음식을 부르는 명칭도 영어다. 이거 주세요, 라고 말하면 끝날 문제이지만 모든 사람이 영어를 할 수 있고 또 유창한 건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주키니 파스타라는 목표가 있으니 일단 음식은 시키고 봤다. 탐스러운 모양에 신나서 면을 포크로 들어 올렸더니 매끈하지 않았다. 면처럼 보였던 것이 애호박이었던 거다. 어떻게 이렇게 면처럼 뽑아내었을지 신기할 정도다. 그렇지만 신기한 건 잠시였고, 정작 먹으려고 하니 면이 너무 길어 잘라 먹기 불편했다. 맛은, 제일 중요한 애호박이 거의 익지 않아 즐겁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악명으로 피하기만 했던 고수(코리앤더)가 첨가되긴 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곁들임으로 나온 구운 토마토나 견과만 깨작깨작 먹었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보험으로 주문한 '안전한' 음식이다. 부라따가 없다고 해서 모차렐라가 나왔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맛은 가스트로 파체에서 먹었던 게 훨씬 좋았다.
곁들임으로 사워도우가 나왔지만, 안 어울렸다. 원래대로 부라따가 나왔다면 진득한 제형이라 발라먹기 좋았을 텐데 싶다.
생소한 음식을 접하고 싶거나, 가게의 철학에 동의하면 좋을 가게다. 그렇지만 주류를 주문하지 않으면 물이라도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그조차 없다. 주인분은 음식에 대한 설명도 해 주시는 등 친절하셨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아 마음에 걸린다.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음식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지만 다음엔 못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