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20. 12. 13. 17:22
작성자
달콤 씁쓸

에쉬튼호텔, 더 가니쉬, 울산대공원, 쉐피, 태화강 국가 정원 (2)

2020.11.


#4 에쉬튼호텔  HP  지도

 호텔은 시청 바로 옆에다 대로에서 크게 들어가지 않아 안심된다.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빌딩뿐이지만 애초에 놀러 온 게 아니라 크게 상관없었다. 시설은 신축이니만큼 깔끔했고 비품들도 필요한 게 잘 갖추어져 있었다. 샤워용품의 향은 감귤~오렌지의 시트러스 향이 기조가 되어 상쾌하다.

 뜨끈한 바닥에서 자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침대는 여전히 낯설다. 과하게 부풀려진 침구들도 부담스럽다. 몸에 바로 전해져오는 따뜻함이 그립다. 이 점에서 침대는 절대 바닥을 따라갈 수 없다. 그렇지만 난방이 잘 되어 찬 데서 잘 때 느껴지는 찌뿌둥한 느낌은 없다. 다소 답답하다고 느껴질 만한 따뜻한 공기를 내보내기 위해 창을 열고 싶었는데 길고 작은 의자와 기타 가구가 가로막고 있어 힘들다. 게다가 창이 바깥으로 열려 아찔하다. 

 

#5 더 가니쉬  HP  지도

 개업 시간에 맞추어 체크아웃을 하고 갔다. 여전히 바깥에는 건물만이 보이지만 외관이 깔끔하여 아무렴 상관없었다. 사진에서 보듯이 식기는 좌석마다 이미 다 놓여 있었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 공석은 치우든가 하는데 그러지 않아 남아있는 식기는 과연 위생상 괜찮은 걸까 걱정이 된다. 

 식탁은 카페와 마찬가지로 대리석 재질인데, 미끄러워서 식기가 밀릴 것 같은 불안이 있다. 진동벨이 달린 점은 좋다.

곁들임

 그렇지만 라텍스같이 보이는, 분명 천은 아닌 장갑을 끼고 음식을 놔 주시는 점은 또 좋다. 

식전 빵

 올리브 오일의 색은 옅다. 겉이 파삭해 가볍고 상큼하게 즐길 수 있다. 

모짜렐라 토마토 파스타(9500원)

 점심 가격은 주말에도 적용됐다. 아마트리치아나에 모차렐라와 토마토소스라는 설명이었지만, 고추가 없어 포모도로라고 봐야 더 적절하다. 토마토소스는 시지 않고 살짝 달콤해 입에 붙는다. 면은 조금 가늘고 익힘은 적당하다. 모차렐라는 큰 덩어리가 두 개 들었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만족한다. 

버섯 리조또(9500원)

 리소토를 담을 때 흘렸는지 접시가 조금 지저분했다. (사진 좌상단) 식전 빵도 진득했던 소스가 지나간 자국이 있었는데 조금 더 신경 써 주었다면 좋을 것 같다. 음식 자체는 고소하면서도 느끼하지 않다. 

오늘의 샐러드(5000원)

 큰 새우가 2개에, 토마토와 양상추를 비롯한 야채가 있던 푸짐한 샐러드. 부드럽고 달콤한, 치즈 요거트로 추정되는 드레싱도 입맛에 맞다. 그러나 '오늘의 샐러드'라고만 적혀있어서 사실 어떤 음식인지는 받기 전까지 몰랐다.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으니 차림표를 낼 때 간단한 설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웬만해선 음식을 안 남기려고 노력하는데, 양이 다들 푸짐해서 어쩔 수 없이 남겼다. 가격도 괜찮고, 단맛에 살짝 기울어져 있지만, 음식도 다들 맛있다.

 

#6 울산대공원  HP  지도

 버스가 드문 이 도시에서 애매한 시간을 죽이기란 참 어려웠다. 그렇다고 카페에 가기에는 배가 너무 불러 운동 삼아 그냥 걷기로 했다. 마침 다음 일정 장소 근처에 울산대공원이 있어 거기에 가 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연꽃 연못', '잉어 연못'도 있다고 했는데 막상 가니 연못은 인공의 것이었고 그마저도 겨울이라 물을 다 뺀 상태라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공원 자체는 매우 커서 애매한 시간을 죽이고도 남을 면적이었고 제철이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곳이었을 것 같다. 이렇게 큰 공공시설이 있는 울산이 조금 부럽다. 

 

#7 쉐피  지도

 짧은 일정을 마치고 들어온 가게. 가고 싶던 가게들의 태반이 애매한 시간대엔 브레이크 타임이랍시고 영업을 하지 않아 걱정하던 찰나, 다행히 여기는 영업을 하신다고 하셔서 냉큼 예약했다. 가게는 옛날 방이 딸린 구멍가게의 구조다. 바깥은 미닫이문에, 창은 단창이라 외풍이 흘러들어와 조금 쌀쌀하게 느껴진다. 선명한 주황색과 차분한 갈색이 빚어내는 내부는 완전한 양식보다는 어디 중화권 나라의 양식집의 느낌을 풍긴다. 

 낯선 이름이 가득한 차림표. 사장님이 오셔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지만, 설명이 길어 머리에 탁 들어오진 않는다. 간단한 설명을 먼저 해 주신 다음, 음식을 내올 때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리코타 샐러드(11000원)

 가지런하게 빚은 리코타, 통으로 들어간 바질. 눈에 잘 들어오는 앞의 두 요소에 비해 아래에 깔린 토마토 워터는 존재감이 옅지만, 향이 강해 이들에 전혀 밀리지 않고 균형을 이룬다. 

쿨린조니스(5000원)

 만두 모양의 생면 파스타. 트러플과 페코리노 치즈가 들어간 소(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는 다소 짜지만, 감칠맛에 입맛을 다시게 한다. 그렇지만 생면이라 가르기가 어려워 먹기는 어렵다. 

뇨끼(9000원)

 정형을 벗어난 만듦새다. 예전에 비트에 데인 적이 있어 비트 퓌레가 걱정되었지만 기우였다. 시각적으로는 당연히 아름답고, 퍽퍽하고 떫은맛은 단맛을 넣어 구황작물과 같은 구수함으로 끌어올렸다. 뇨끼라고 할 만한 부분은 맨 밑의 층인데, 쿨린조니스와 마찬가지로 풍미가 강하다. 퓌레와 뇨끼는 둘 다 진득한 질감이라 중간에 튀긴 생면을 채워 넣어 지루함을 날린다. 밀도 있는 맛은 위에 있는 레몬 제스트가 환기해준다. 

브리제(10000원)

 뇨끼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작은 케이크와 같은 브리제. 페이스트리 위에 감자와 당근 퓌레(?)를 올려, 프로슈토를 얹었다. 의도는 바삭함-뻑뻑함-쫄깃함을 한입에 넣으라는 것일 텐데 프로슈토가 서로 뭉쳐서 해체작업을 거쳐야 해 그럴 수가 없었다. 

크로켓(5000원)

 정말 아름답게, 군더더기 없이 잘 튀겨진 크로켓이다. 

크레스텔레(4000원)

 사과 콩포트에 크레이프를 아름답게 말아 올렸다. 역시나 마무리에 적합한 음식이었다.

 딱 먹을 만큼만 음식을 시키는 편이지만, 이 가게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어 드라마에 나오는 갑부처럼 모든 음식을 주문했다. 미리 알고 갔지만 역시나 실험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음식들이었다. 만듦새에 사장님의 고민이 들어갔다는 게 담뿍 느껴졌고, 아름답기도 했지만, 먹기 어려운 게 많아 조금은 아쉬웠다. 

 

#8 태화강 국가 정원  HP  지도

 울산대공원의 어마어마한 넓이에 놀랐는데, 태화강 국가 정원은 더 넓었다. 울산 하면 태화강이 제일 먼저 나오는데 과연 그럴 만하다 싶다. 여기도 역시나 철이 지나 갈대만 남았지만 나름의 멋이 있다. 

 멀리서 보니 뾰족한 싸리 빗자루 같던 십리대숲은,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이 넓은 흙을 봄에는 다시 색색의 풀들이, 꽃들이 메울 것이다. 분명 아름다울 태화강의 사계를 근처에서 만끽할 수 있는 울산시민이 새삼 부럽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