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먹으러 경주 (1)
2021.6.
여행 목적으로 경주에 가는데, 교통수단이 열차라면 아무렴 KTX보다는 무궁화가 편하다. 그런데 예약하려고 보니 희한한 좌석이 있다. 4호차에 마치 KTX에 있는 것과 비슷하게, 동반석이라는 이름의 마주 보는 좌석이 있는 거다. 마주 보며 갈 수 있어 냉큼 예약했는데 낭패를 봤다. 다른 좌석과 분리되어 있어 마치 특실인 것 같은 느낌은 처음뿐이었고, 막상 앉으니 소음이 심해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열차 차량을 넘어갈 때의 소음이 내내 들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동반석 너머에는 본래 열차 카페가 있었으리라 추정되는 곳이 있었는데, 지하철 좌석처럼 마주 보는 일자형 좌석을 깔아 놓았다. 한쪽이 4~5석 정도, 총 8~10석이니, 시간만 잘 맞추면 입석이라도 앉아갈 수 있을 듯하다.
이번의 경주는 식도락을 목표로 떠났다. 일단, 이 글에서 들른 곳은 다음과 같다.
처음으로 들른 곳은 보배 김밥(지도상 경유 1)이다. 사실 올 때마다 교리김밥을 먹어왔지만, 너무 비싸진 데다 불친절해서 가격 대비 만족감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보배 김밥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경주역에서도 가까워 포장 주문한 후 적당한 곳에서 먹기로 했다. 보배 김밥은 경주역에서 시장 쪽으로 건너가면 되는데, 시장 안에 있어 그런지 지도가 정확한 위치를 표시해주지 못해 몇 번이나 빙글빙글 돌았는지 모른다.
처음엔 지도만 믿고 경주역에서 성동시장 쪽으로 직진한 후, 제일 먼저 등장하는 오른편 골목을 타고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엔 팥죽이나 떡이 즐비할 뿐이었다. (흔히 볼 수 없는 팥 송편이 있긴 하다) 김밥을 비롯해 다른 블로그에서 자주 보이는 한식 뷔페 가게를 가려면 첫 번째로 나오는 골목을 지나쳐 계속 직진해야 한다. 그러면 버스정류장이 나오는데, 그 옆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위를 보면 경주 성동시장이라고 간판도 있으니 아마 쉬울 듯하다. 거기가 먹거리 골목인지 김밥, 꽈배기, 한식 뷔페 가게들이 수도 없이 있었다. 보배 김밥은 그 골목을 따라 쭉 가면 오른쪽에 있다. 가격은 1인분 2500원.
김밥을 사긴 했지만 먹을 수 있는 곳이 시장에 있을 리 만무해서 무작정 고분 쪽으로 향한다. 그러기 위해 시장에서 다시 출발점인 경주역 쪽으로 돌아와 경주빵과 찰보리빵 골목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갔다. 인도를 타고 오른쪽으로 살짝 꺾으니 찰보리빵이 탄생한 집이라고 홍보하는 가게인 단석가(지도상 경유 2)가 있다. 확실히 찰보리빵은 은근한 쫄깃함에 얼려 먹으면 또 그것도 맛있는 기막힌 과자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가게 앞에서 홍보하는 찰보리 아이스크림이 궁금했다. 날은 화창했지만 움직이면 더워 하나 샀다. 한 개에 2500원. 미숫가루 맛이고 아이스크림 특유의 텁텁한 끝맛은 덜하다. 곡물의 거친 느낌도 없다. 한편으론 분말이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호기롭게 김밥을 포장한 건 좋았다. 그렇지만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까지도 김밥을 먹을 만한 곳은 없었다. 뭐든 찾으려고 용을 쓰려면 도리어 없는 법이다. 그렇게 무작정 걷다 보니 대릉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로를 기준으로 대릉원 맞은편에는 경주 노서리 고분군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근방으로 정자(지도상 경유 3)가 조금 있기 때문에 김밥이나 주전부리를 먹을 수 있다. 바닥에는 잔디가 가득한데, 많은 사람이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요가 수업을 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고분 하나하나가 유적에 해당할 텐데도 딱히 입장 제한도 없는 데다 그 풍경이 일상생활과 섞여 상당히 낯설다. 직접 보는 게 처음이었던 후투티라는 새도 이에 일조한다.
그런 풍경을 보며 김밥 뚜껑을 연다. 제대로 된 점심을 먹는 셈이라 설렌다. 김밥 소의 종류는 많으나 대강대강 싼 모양새라 이상하게 단출해 보인다. 제대로 썰지 않아 끄트머리가 붙어버린 김밥도 몇 있다. 심하게 말하자면 가정에서 나들이 갈 때, 정성 들여 싸는 김밥보다 못하다. 그런 수수한 맛의 김밥이지만 진득한 달콤함이 있는 우엉 조림과 함께 먹으니 자극적이라 썩 맛있다. 재료만 우엉으로 바뀐 쥐포를 곁들여 먹는 맛이다. 뭔갈 곁들여 먹는다는 점에선 충무김밥과 비슷하다.
식사를 다 하고 대릉원 쪽으로 넘어갔다. 도보로 첨성대에 간다면 대릉원 입구에 채 도착하기 전 나오는 한산한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는 게 조금 낫지만, 이번에는 잘 먹는 게 목적이고 첨성대도 들르지 않을 거라 대릉원 입구 옆에 직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길인 황리단길로 가는 게 낫다. 설사 길을 모르더라도 사람들만 따라가면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북적거린다.
황리단길을 제대로 걷는 건 처음인데, 휴일이라 그런지 과연 사람이 많다. 온갖 운세 뽑기, 먹거리, 기념품 가게가 앞다투어 들어선 데다 사람들도 어지럽도록 많아 눈이 핑 돌아간다. 길 초입에서 보면 끝까지 다 보일 정도로 반듯하게 난 길이라 더 그렇다.
여기에서 유명한 먹거리로 언급되는 건 황남옼수수, 황남 쫀드기, 황금 십원빵 정도인데 개수로는 고작해야 세 개지만 끼니는 끼니대로 챙길 거라 이 수가 부담되어 제일 궁금한 황남옼수수(지도상 경유 4)만 들렀다. 지도 앱을 보면서 더듬더듬 걸어갔는데,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굳이 지도를 안 봐도 될 뻔했다. 나머지 가게도 마찬가지다.
가게는 포장 전문 음료 가게 정도의 크기로, 가게 크기만 아니라 주문하고 물건을 받는 과정 또한 비슷하다. 먼저 주문부터 하고 줄에서 나온 다음, 나중에 완성된 음식을 받아든다. 그래서 줄 근처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이 발생하고 필요 이상으로 가게 근처가 복잡하다.
천신만고 끝에 받은 음식. 튀긴 거라 최대한 바삭할 때 먹고 싶었다. 다행히 근처에 분수와 의자가 있어서 거기서 먹었다. 옥수수는 반죽에 버무려 튀겼는데 어떤 건 알알이 튀겨지고, 어떤 건 여러 개가 하나로 뭉쳐 튀겨지기도 했다. 바로 먹어 바삭했지만 역시 기름은 부담스럽다. 그걸 황남 소스라는 이름의 매콤한 마요네즈 소스에 버무리니 맛있어지는 건 당연하고, 기름의 느끼함도 줄었다. 하지만 일시적인 거라 반 이상 먹어가니 다시 물린다. 한 번으로 족했다. 다 먹고 손에 미세하게 기름이 묻었는데, 다행히도 황리단길을 계속 가다 보니 공중화장실이 있어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다.
한 번밖에 못 먹은 탓인지 주기적으로 그리웠던 경주원조콩국(지도상 도착 지점). 가게는 식사 시간이 지나 그런지 한산하다. 이 계절엔 우뭇가사리가 제격이지만 지난번에 맛있게 먹은 게 따뜻한 콩국이기 때문에 과감히 버린다. 따뜻한 콩국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1번 메뉴는 저번에 먹어 봤으니 들깨, 계란 노른자, 흑설탕이 들어간 3번 메뉴를 골랐다. 계란 노른자를 넣으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반쯤 섞인 주문이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복병은 계란 노른자가 아닌 들깨에 있었다. 들깨 특유의 푸릇한 향이 콩국의 고소한 맛을 덮는다. 콩국수는 원체 기본이 되는 콩국이 진하다 보니 무난하다. 그렇지만 따뜻한 콩국의 아련한 환상이 깨져 다음에 올지는 잘 모르겠다. 여름이라 따뜻한 콩국이 덜 와닿는지도 모른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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