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먹으러 경주 (2)
2021.6.
황리단길도 봤고, 콩국도 먹었다. 이젠 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카페가 필요했다. 왔던 길을 거슬러 점심을 먹었던 경주 노서리 고분군 쪽으로 돌아간다. 되돌아갈 때마저 사람과 섞이긴 싫어서 돌담길을 끼고 걸어갔다.
경주 노서리 고분군 바로 옆 골목에 있는 데네브(지도상 경유 1). 여름철 대삼각형을 이루는 백조자리의 별 이름이기도 한 데네브는 주변이 한산해서 그 이름대로 더욱 빛난다. 빵이 맛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주말이라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덮개가 없는 것도 신경 쓰인다.
가게는 목재가 많이 사용되어 갈색이 지배적이다. 내부는 테이블 6개 + 창가 좌석 4개 정도로 생각보다 작지만, 화장실이 있어 좋다.
좌석이 있는 공간의 외벽은 통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가려지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좌석에서 고분을 볼 수 있다.
손으로 직접 적으신 듯한 메뉴판에는 상호처럼 별 모양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음료는 커피든 커피가 아니든 그 종류가 많진 않았다. 고민 끝에 고른 건 애플 시트러스라는 차인데, 엠페르뒤의 것이었다. 사과와 히비스커스를 섞은 거지만 히비스커스가 압도적이다. 그렇지만 더워지는 날씨에는 딱 좋은 정도다.
새콤한 음료에는 달콤한 디저트다. 데네브의 까눌레는 여태까지 봐온 까눌레보다 높이는 낮지만 단단한 바삭함이 살아있다.
저녁 식사를 위해 가게를 나와 월성초등학교를 끼고 돈다. 여전히 경주는 발굴작업 중이었다. 현장을 감싼 철망에는 발굴의 과정이 간단하게 걸려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고분 위에 예의 없이 자라난 나무들. 어디까지 뿌리를 뻗었을까 궁금하다.
고분을 벗어나 경주역으로 이어지는 대로로 나온 뒤, 길 건너편으로 간다. 옆에 나 있는 골목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주스트윤(지도상 경유 2)이란 가게가 나온다. 마음 같아서는 코스요리를 먹고 싶었는데, 이것저것 먹은 탓에 배가 불러 그러질 못했다.
밝은 갈색과 청록빛의 파란색이 두드러져 시원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든다. 벽 수납장에는 책과 식기 등이 가득하다.
제일 먼저 나온 음식인 홍새우. '홍고추 버터로 구운 새우와 쿠스쿠스'라는 설명을 보고 주문했는데 쿠스쿠스가 빠졌다. 쿠스쿠스가 작은 식사가 될 것 같아 일부러 골랐는데 안내도 없었다.
다음으로 나온 식전 빵. 겉은 깜빠뉴, 속은 치아바타와 비슷했다.
식기는 도자기로 보였다. 앞접시가 미묘하게 다 달라 개성이 있다.
드디어 나온 파스타. 앤쵸칠리 토마토라는 이름 때문에 앤초비, 칠리, 토마토가 들어갔을 것 같지만 앤쵸칠리가 하나의 명사다. 스페인의 고추라고 하는데 맵진 않았다. 희한하게도 토마토소스에 바질페스토까지 더해졌는데 채소와 채소의 궁합이라 싱그럽다. 파파(르)델레 면이라 먹기엔 조금 불편하다. 심지어 붙어버린 면을 조리 과정에서 제대로 떼어내지 않고 담아낸 것도 있다.
마찬가지로 파파델레 면을 쓴 표고버섯 크림. 표고버섯으로 파스타를 만드는 곳은 못 보아서 신선했다. 소스는 마스카르포네 크림과 섞어 특유의 향이 강하진 않았으며 리코타 치즈처럼 조금은 되직하면서 우유 맛이 난다. 같은 버섯인 트러플도 오일로 살짝 더해졌지만 두 버섯 모두 향이 세진 않고 크림 속에 녹아들었다. 새송이는 아주 얇게 슬라이스하여 위에 몇 점 얹어졌는데(사진에서 유달리 흰 면처럼 보이는 것) 뻣뻣한 치즈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음식 또한 메뉴판에 '페투치네'라는 설명이 있었는데 면이 사전 안내 없이 파파델레로 바뀌었다. 설명에는 '새송이 장아찌'를 사용했다고도 적혀 있었지만 먹었을 때 장아찌 같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안내 없이 음식 재료가 바뀌는 황당함을 느꼈지만, 맛은 좋았기에 묵묵히 식사하고 있었다. 그러자니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나오신다. 직원을 부를 때 종을 사용하라고 자신이 예전에 골동품 매장에서 산 종을 주셨다. 시험 삼아 종을 울려보니, 이른 시간이라 아직 사람이 없는 탓에 청아한 소리만 가게에 가득하다. 신기한 데다 소리도 아름답다.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니 몇 개 더 보여주셨는데 소리가 다들 달랐다.
식사는 끝났지만, 마무리가 필요해 단 음식을 시켰다. 진한 베르가못 풍미의 아이스크림이라는 얼그레이 아이스크림은 설명 그대로의 정직한 맛이었다. 의도적인지는 몰라도 나올 때부터 살짝 녹아 있다. 밑에는 (아마도) 레몬 꿀리가 밑에 깔려 있어 마지막이 상큼하다.
히비스커스 꽃잎과 생강으로 만들어졌다는 히비스커스 소르베는 생강 덕인지 데네브에서 먹었던 차와는 달리 시큼함이 튀지 않는다. 얼음 입자도 크지 않고 부드럽다. 밑에는 얼그레이 아이스크림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레몬 꿀리가 깔려 있어 비슷하게 마무리된다.
서비스로 나온 캐러멜 아이스크림이다. 역시나 녹아 나왔지만 태운 설탕 맛이 진해 즐겁게 먹었다. 아래에는 다른 디저트와 마찬가지로 (아마도) 레몬 꿀리가 있다.
안내 없이 음식 재료가 빠지거나 대체되고, 음식에 대한 설명도 부족한 건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렇지만 내오는 음식은 튀는 것 없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무작정 가게가 별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기회가 있다면 한 번은 더 가고 싶다.
좋다, 나쁘다로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던 주스트윤을 나와 경주역(지도상 도착 지점)으로 걸어가자니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오롯이 먹기만 한 여행은 처음인데 나쁘진 않았다. 그래도 다음에는 보는 것과 먹는 것의 균형을 잘 이루고 싶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니 다른 한쪽이 허전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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