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21. 9. 20. 21:20
작성자
달콤 씁쓸

그래도 제2의 도시, 부산 (1)

2021.7.


 대중교통만 이용하니 항상 경주와 부산만 가게 된다. 주요 도시만이라도 접근성이 좋았으면 하는데 당장 대구에서 전라권에 가는 것도 대전을 거쳐서 가야 하니 어이가 없다. 수도권 중심의 대중교통망 체계는 2021년에도 여전하다. 그렇게 가게 된 경주와 부산이지만 다행히도 몇 번을 가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토렴국밥(9000원)

 당일 여행이라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일찍 가서 동대구역의 마루가메제면에서 식사하려고 했는데, 기차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하는 바람에 가게에는 눈길도 못 주고 바로 기차를 탔다. 안 그래도 역사 2층에 있어 접근이 어려운 곳인데, 최근 뉴스를 보니 한국 사업을 철수했다고 하니 영영 생각만 하고 못 간 셈이 되었다.

 식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수면도 중요했다. 피곤한지라 일단 자고 봤더니 벌써 내릴 때가 되었고 식사는 해야 했다. 이른 시간이라 역사에도 문 연 곳은 많지 않았고 그래도 아침은 밥이라는 생각에 양산국밥에 들어갔다. 배가 고픈데 괜히 힘을 쓰고 싶지 않아 검색 없이 들어갔는데 실수였다. 해운대에 있는 '양산국밥'이 본점인 듯한데, 본점은 평이 좋을지 몰라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문을 마치고 음식만 기다리고 있는데 구석에서 빗자루질하는 것부터가 별로였다. 엄연히 가게를 열어 손님을 받는 시간인데도 말이다. 

 차림은 깔끔하긴 하다. 쟁반에 1인 상이 가지런하게 놓였다. 나무 쟁반 위에 유기그릇과 유기 숟가락이 더해지니 없는 역사마저도 생기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젓가락은 탁자 옆에서 따로 꺼내야 해서 따로 논다. 음식은 로봇이 가져다주는데, 가져다주기만 하고 내리는 건 종업원이다. 로봇이 흥얼거리며 손님 앞으로 갈 때 종업원이 뒤에서 어정쩡하게 따라가는 걸 보자니 이건 손이 가볍다는 장점만 있을 뿐 로봇과 종업원이 가게를 돌아다니니 사람이 많을 땐 오히려 복잡하지 않을까 싶다.

 국물은 맑다. 맑은 국물보단 뽀얀 국물을 좋아하지만, 선호에 따른 호감은 차치하고서라도 국물이 깍두기를 푼 것처럼 조금 새콤해 얼굴이 절로 찡그려진다. 첫입에 후추 향이 감도는 것도 취향이 아니었다. 적당한 온도의 물로 익혀 조리했다는(수비드) 목살은 부드럽다. 순대는 김밥 4배 정도의 길이로 2개가 들어있는데, 고기 맛보단 구수함이 우세하다. 그렇지만 역시나 음식의 전체 인상은 국물인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식사는 감정에 많이 좌우되는 걸 느낀다. 불만족스러우니 배가 부르지 않다. 간식을 사러 역 오른쪽에 있는 삼진어묵에 간다. 분명 코레일이 삼진어묵을 쫓아낸 꼴이었던 것 같은데 승차권 제휴 할인에는 또 실어줘서 혜택을 얻어보려고 갔다. 어묵고로케 1개를 무료로 증정한다는데, 어묵고로케가 10시쯤에나 나온다고 해서 다른 어묵만 몇 개 사서 나왔다.

해운대 스카이 캡슐
미포 정거장

 미포 철길에 간다고 하면서 못 갔는데 결국엔 여기에 다른 문물이 생겨버렸다.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 땅으로는 해변열차, 위로는 스카이 캡슐을 운행하는 관광시설이다. 2층으로 된 미포 정거장은 일견 멋있어 보이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해변열차가 출발하는 1층에는 카페와 편의점, 대기 좌석이 있지만 스카이 캡슐이 출발하는 2층은 그조차 없다. 정거장 옆은 또 공사 중이라 어수선하다. 조금만 더 가면 해운대 해수욕장이었지만 정거장이 번화가에선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 그런지 주변도 건물과 마찬가지로 썰렁하다.

 한편 미포 철길은 그 후로 아예 시설의 점유물이 된 듯했지만 지겨울 정도로 긴 미포 정거장의 진입로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미포 철길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터널 또한 해변열차의 개찰구를 왼쪽으로 끼고 계속 걸으면 볼 수 있다.  

 해변열차와 스카이 캡슐 모두 나름대로 좋아 보였으나 개인 공간이 보장되어 스카이 캡슐을 탔다. 속도는 정말 느리다. 시속 4km라 되어 있으니 걷는 거나 매한가지다. 약한 진동에 손수레를 끌고 가는 듯한 소음은 좋은 경치를 앞에 두고도 제대로 된 대화를 못 나누게 한다. 여기에다 해변열차와 달리 냉방시설도 없어 창을 열어야 한지만, 해운대의 특성인지 바람이 강하게 불어 그나마 나았다. 그런데 겨울엔 어떻게 할는지 궁금하다. 

 송정까지 갈 수 있는 해변열차와 달리, 스카이 캡슐의 종착역은 청사포 정거장이다.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게 못내 불만이었지만 막상 타니 속도가 느려 실제로 갈 수 있다고 해도 사양하고 싶어졌다.

 청사포 정거장에는 뮤제드블루라는 갤러리 카페가 있다. 세 작품이 있는데,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원작을 캐스팅한', 즉 원본을 잘 재현한 복제품이 전시돼있다. 단 두 점밖에 제작되지 않은 거라고 하지만, 진품은 아니다. 한편 피카소의 작품은 원화이나 유명한 작품은 아니며, 나머지 하나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미디어 예술품이다. 굳이 들를 필요는 없었다.

 청사포는 옛날 동네 같은 느낌이라 정거장 바깥으로 나왔을 땐 툭 던져진 느낌마저 들었다. 아까 있던 곳과는 너무 달랐다. 살다 보니 거기가 터가 된, 정련되지 않은 집들. 곳곳에 보이는 생업 도구. 이들을 엮듯 겨우겨우 나 있는 도로와 마을버스 정류장. 제2의 도시임에도 여전히 도시화의 바람을 맞지 않고 남아 있어 부산이 본디 무얼 하던 곳이었는지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런 점이 부산을 여전히 매력인 도시로써 존재케 한다. 따지자면 대구도 권역별로 차이가 나서 이런 곳을 찾으려면 수없이 많지만 역시 다른 도시라는 것만으로도 더 다가오는 게 있다. 멀리로는 쌍둥이 등대도 보이지만 햇살이 따가워 감히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정류장으로 간다. 축 늘어진 배춧잎처럼 앉아 언제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해녀들이 잠수복을 입고 맨발로 강인하게 걸어간다. '행복한 도시어촌'. 이름 참 잘 지었다 싶다. 편의시설이 더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 이대로도 좋은 것 같다. 

 볼 만큼 봤고 즐길 만큼 즐겼으니 남은 건 식사뿐이다. 해운대의 청사포를 떠나 광안리에 있는 뜨라또리아 단테로 갔다. 가게는 예약을 권장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다 보면 시간을 잘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갔다. 아니나 다를까 예약 여부를 물어오긴 했지만, 운이 좋게도 자리가 남아 식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온 사람 또한 예약 없이 방문했지만, 자리가 없어 되돌아가야만 했다. 1인 식당이고, 가게는 넓지 않아서다. 당연히 식탁의 간격도 넓지 않아 옆 사람이 신경 쓰였지만, 가림막이 있어 심적 안정감을 얻는다. 최근엔 가림막이 오히려 환기를 방해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아무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아직까지는 좋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영어로 도배하다시피 해놓은 메뉴판을 보다가 한국어가 가득한 걸 보니 반가움마저 든다. 

식전 빵

 식전 빵으로는 참깨 그리시니와 크랜베리 빵을 주셨다. 둘 다 사워도우처럼 시다. 

부라따 치즈와 대추방울 토마토 샐러드(23000원)

 멋지게 정렬돼 나오는 음식을 보면 먹기 전부터 웃음이 나온다. 푸른 바닷빛 접시에 담긴 샐러드는 레몬 드레싱을 입고 더욱 상큼하다. 

포르치니버섯 크림 딸리아뗄레(19000원)

 샐러드의 담음새에 감탄했기에 파스타는 반대로 한 끗이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다. 파스타는 포르치니 버섯에다 한국에서 자주 먹는 느타리버섯, 양송이버섯, 표고버섯도 들어갔다. 특히 표고버섯은 파스타에서 잘 못 봐서 더 반갑다. 그렇지만 표고버섯의 향이 한가닥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대적으로 포르치니 맛이 옅다. 한편 면은 힘이 있고 씹는 맛이 있으며 크림은 다소 맑다. 

새우 비스크 크림 오징어먹물 딸리아뗄레(19000원)

 이어 나온 비스크 크림 파스타. 면에 들어간 오징어 먹물이 점성이 있어 빨리 면을 풀어야 한다고 한다. 게장 비빔밥처럼 진한 맛의 비스크 크림을 기대했는데 연하다. 포르치니 파스타도 그렇고, 이 가게의 특징인 듯하다. 

깐투치니

 마무리로는 차와 함께 곁들임 음식이 나온다. 식후 음식은 주기적으로 바뀌는 듯한데, 이날은 이탈리아 쿠키인 깐투치니였다. 뻑뻑한 스콘 같은 느낌이었는데, 안엔 헤이즐넛이 있어 오독오독 씹힌다.

 생면 파스타라고 해서 찾아간 곳이었는데, 대구에도 생면 파스타 가게가 많아져 생각보다 큰 감흥이 없다. 한국어로 된 메뉴판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느껴지는 음식에 대한 열정은 참 좋았지만, 타지역에서 방문한다면 동선을 수정하면서까지 들르기에는 애매한 곳이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