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제2의 도시, 부산 (2)
2021.7.
식사한 뒤 광안리 해변을 걷고 있자니, 본의 아니게 해수욕장을 두 군데나 들른 셈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운대와 광안리는 둘 다 유명했지만, 해운대는 스카이 캡슐에서도 느껴질 만큼 바람이 거셌다. 하늘까지 닿을 듯한 건물은 유리를 입어 더 미래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한편 광안리는 바람이 잔잔하다. 부산역에서도 보이는 명물인 광안대교와 함께 조금 더 푸근한 느낌이 있다. 그렇지만 두 곳 모두 공실이 거의 없어 도심지부터가 괴멸할 조짐을 보이는 대구와는 천양지차였다. 과연, 거리만 가까울 뿐이지 그래도 부산은 제2의 도시였다.
해변가에는 인증샷을 찍으라고 광안리라는 글자 조형물이 있다. 해운대는 글자가 있는 곳까지 안 가서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역시나 있다. 그렇지만 한글이 쓰인 광안리가 좀 더 좋다. 제발 한국이면 한글과 한국어를 좀 사용하자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해변을 따라서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파라솔이 가득한데 사람은 많지 않다. 모래사장을 옆에 낀 인도에도 드문드문 야자수(?) 파라솔이 있었는데, 그중 일부에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무선충전기가 있었다. 기능은 있지만 활용하지 못하던 휴대폰의 무선 충전 기능을 적극 활용해보고자 당장 파라솔 아래로 갖다 댔다. 그렇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많이 사용한 탓인지, 아니면 전지가 부족한 탓인지, 고장인지 충전 표시는 뜨나 얼마 가지 못하고 충전이 멈춘다. 아쉽긴 하지만 휴대폰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니까.
한참 걸으니 또 지친다. 여름이면 역시 빙수이니 오랜만에 설빙에 들렀다. 햇빛 탓인지 조명을 반쯤 꺼놓은 데다 구석엔 사용하지 않는 의자도 정신없이 정리해 놓아 진득이 먹기엔 다소 어수선하다. 그런 데다 인절미 빙수는 정신없이 담겨 지저분해 보인다. 여전히 맛은 있지만, 공간이 별로였고, 마냥 좋아하기에는 가격도 너무 올라 버렸다.
쉴 틈은 없다. 음식도 관광의 일부다. 부지런히 움직여 항상 가던 이재모 피자에 갔다. 가는 길은 썰렁하다. 그렇게나 북적거리던 남포동은 해운대나 광안리와 달리 코로나19가 만든 불황의 바람을 피하지 못한 듯하다. 그렇지만 이재모 피자는 원래부터가 잘 되던 가게라 이 와중에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음식 맛도 여전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땐 이젠 안 와도 되겠다 싶었는데 오랜만에 먹으니 또 새롭게 맛있다. 프랜차이즈에서 시키는 치즈크러스트는 요즘 영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여기는 치즈가 참 맛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보았던 서빙 로봇도 있어 기다리면서 로봇을 보는 재미도 있다.
아직 먹부림은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식사를 마무리해도 충분했지만, 부산시에서 선정한 낭만 카페 중 하나인 레귤러하우스가 신경 쓰여 욕심을 부렸다. 가게에 들어가기 전 안심번호로 전화를 거는 건 이미 익숙하다. 생각해보니 대구는 가게에 입장할 때 출입 명부를 수기 명부, QR코드, 전화 중 하나로 관리하는데 부산은 방문한 곳 모두가 전화로 출입 명부를 관리한다. 아무래도 지자체 사업인 듯했다. QR코드는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가 존재할 거고, 수기 명부는 개인정보 유출이 신경 쓰였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반갑다.
레귤러하우스는 이재모 피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길어도 3분 정도다. 2층에 있는 데다 주위가 시장이라 뜬금없는 곳에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막상 들어가면 별세상이다. 일단 시원하여 쾌적하다. 카페는 나무 소재가 많아 고동빛으로 가득했고 조명도 약간 어두워 아늑하고 편안하다. 공간을 감싸는 재즈는 공간을 더욱 분위기 있게 만든다. 곳곳에 사진을 찍으라고 만들어 놓은 곳도 있어 사람만 없다면 마음 가는 대로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일행이 시킨 페퍼민트 레몬라임티는 아쉽게도, 상쾌함보다는 달콤함이 앞섰다. 청을 푼 듯 진득하여 개운함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 홍차는 잎을 우려 주어 좋았다. 전용 주전자에 담아 내주어 오랫동안 따뜻함이 유지되는 것도 장점이다. 배가 불러서 케이크를 더 시키진 못했지만, 같이 먹으면 더욱 좋았을 뻔했다.
더 있고 싶었지만, 열차 시간 때문에 카페에 들어가서 한 시간도 안 되어 나왔다. 조금 더 진득하게 있고 싶었지만, 여행만 하면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이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부산이 지겨워지거나 익숙해지면 가능할 텐데, 과연 그럴 날이 올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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