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실제는 다르다, 신궁 외원 은행나무길
2021.11.
나라마다 가로수의 종류가 다른 게 소소하게 놀랍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흔한 은행나무이지만 일본에서는 잘 보질 못했다. 그렇지만 당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한다고 바빠서 좀처럼 외출하지 못한 탓도 있지 않나 싶다. 못 보면 없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메이지 신궁 외원에 있는 은행나무길엔, 이름대로 은행나무가 가득하다. 보통 가로수는 차도 쪽에만 1열로 심는데, 여긴 차도 쪽만 아니라 차도와 멀리 떨어진 쪽에도 심는다. 즉, 한 인도마다 2열의 가로수를 심는 셈이다. 거기다 간격은 빽빽해서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빈틈이 없다. 물론 이는 인도가 넓어서 가능하다.
은행나무를 보며 가지치기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어떻게 손질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은행나무의 인상이 달라지는구나 싶다. 위로 쭉 뻗은 이등변삼각형의 전형이다. 너무 위로 뻗어 원경으로 가서는 안테나처럼 보이는 부분은 곧 가지치기하겠거니 싶다.
그러나 숲속에 있으면 숲을 보지 못한다. 멋진 사진에 반해서 꼭 직접 보리라는 생각으로 간 곳이었지만, 막상 가로수 밑을 거닐게 되니 양옆으로 펼쳐지는 은행나무의 위압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당연하다. 그렇다고 압도적인 단풍을 느낄 수 있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은행잎이 한꺼번에 노란 빛으로 물들지도 않아 얼룩덜룩했으며, 아랫부분은 잎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도 사진만은 그럴듯하게 보이니 감사하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은행나무 바깥으로 나오면 사진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긴 하지만, 차가 다니기 때문에 마냥 감상에 젖을 순 없다.
그래도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건 마냥 좋다. 역시 수도라서 그런지, 무수한 은행잎만큼 사람도 많다. 얼마나 사람이 많이 다녀갔는지, 한참 전에 가루가 된 은행잎이 몸소 증명한다.
조예는 없지만, 최근에는 아름다운 건축물에도 관심이 생긴다.
은행나무의 아름다운 경치를 낀 음식점들은 많았지만, 그 모두가 사람들로 북적거려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도쿄올림픽 개회식 및 폐회식이 열린 국립경기장을 보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나무 소재와 식물들이 인공물을 자연처럼 보이게 만든다. 국립경기장임을 알리는 입간판은 어느 쪽에서든 뒤집히는 일 없이 똑바로 '국립경기장'이라는 글자를 나타낸다. 편광필름 같은 재질의 것이 두 겹으로 세워져 있어 시점에 따라 흔들거리는 느낌이 있는데, 어떤 구조인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잠깐이었지만 인상에 남았던 이 건물은, 건축가 쿠마 켄고와 아즈사 설계, 타이세이 건설의 협업에 의한 것이라 한다.
식사는 유명하다는 커리집 요고로라는 곳에서 했다. 초행길이다 보니 지도에 의지하며 찾아갔는데, 가게가 골목길에 있다 보니 위치정보가 바로 갱신되지 않아 처음엔 가게를 보고서도 지나쳤다. 저 가게는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람이 많네, 하고 지나친 곳이 바로 요고로였다.
가게는 반지하에 있다. 줄이 길게 늘어서다 보니 회전율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줄 선두에 서면 미리 주문을 받는다. 커리는 키마커리를 제외하고서는 토마토 커리와나 시금치 커리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주재료가 무엇인지에 따라 종류가 달라진다.
착석하는 데 30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실내는 반지하인 것도 있어 아직 해가 떠 있는데도 어슴푸레하다. 나무 소재의 가구가 많지만, 세월이 있어 가라앉은 느낌을 준다.
좌석은 주방에 붙어있는 일자형 좌석도 있으며 2인용 좌석도 있다. 이들 간격은 좁지만, 가림막이 있다. 사실 가림막으로 따지자면 과학적으로 큰 효과를 주지 못하며, 되려 역효과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는 한다. 그렇지만 남과 분리시켜준다는 사실이 현 상항에서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니 그저 반갑다.
수저는 각 식탁에 비치된 걸 가져가는 방식이다. 수많은 이들의 손이 거쳐 갔을 거로 생각하니 영 찝찝하다. 그래도 물티슈와 휴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
식사는 사진이 전부이다. 곱게 갈린 시금치는 크림보다는 조금 거친 느낌이며, 아주 고운 알갱이만 남아있는 상태의 반죽과 같다. 확실히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식감이다. 그렇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자극적이라 나중에는 속에 탈이 났다.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은 맛있는 음식이 이외에도 많으니 굳이 먹지 말고 얌전히 다른 가게를 찾는 게 좋을 듯하다. 하지만 매운 걸 떠나 위생부터가 문제다. 도대체 마지막으로 청소한 건 언제인지 의심되는, 시커멓게 눌어붙은 주방의 환풍기를 보면 재방문하고 싶은 의욕이 확 떨어진다.
하라주쿠 역으로 돌아가려고 보니 노아 카페라는 곳에서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와플 냄새가 난다. 입간판은 기간 한정 메뉴로 몽블랑 와플을 내걸고 있었다. 커리는 자극적었고 양도 성에 안 차니 또 먹어도 되겠지, 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며 가게에 들어섰다. 공간도, 좌석 간 간격도 적당해 커리집에서의 답답함이 좀 해소된다. 몽블랑 와플은 음료랑 같이 마시면 점심에 먹은 커리 가격의 배 가까이 되지만, 덕분에 행복하니 됐다 싶다. 홍차가 티백이 아닌 것도 마음에 든다.
카페에서 하라주쿠 역까진 금방이었다. 목조 역사가 정겨웠던 아담한 하라주쿠 역은 그새 개축되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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