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22. 4. 16. 21:34
작성자
달콤 씁쓸

모리 미술관 '어나더 에너지' 전

2021.12.


 항상 그렇듯이 일정의 시작은 식사부터다. 거리가 필요한 코로나 시대에, 문 여는 시각에 맞추어 식사하지 않으면 금방 실내가 북적북적해져서 불안하기 때문이다. 영업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자니 맞은 편의 귀여운 고등학교 간판이 보인다. 

런치 세트(1000엔)

 찾아보니 근처에 화덕피자가 유명한 가게 '사보이'가 있어서 본의 아니게 또 화덕피자를 먹게 되었다. 점심에 식사하면 복숭아 아이스티, 샐러드, 피자(마르게리타 또는 마리나라 중 선택)를 1000엔에 먹을 수 있다. 단, 가격이 저렴한 만큼 현금결제만 가능하다. 

 가게는 좁고 의자는 높다. 화덕과 주방을 한쪽에 크게 놓고, 좌석이 이를 둘러쌌다. 자리가 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피자를 만드는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건 좋다. 주인공은 요리사다. 쏟아지는 타인의 시선에다가 종종 카메라 렌즈까지 들이대는 상황이 올 텐데도 요리사는, 겉만 봐서는 부담으로 느끼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듯도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요리사는 슬쩍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샐러드는 딱 허기만 조금 채울 정도다. 

마르게리타

 앞에서 볼 땐 흐느적거리는 반죽으로만 보였던 것이 화덕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니 빵빵해졌다. 먹어보니 도우는 쫄깃하기만 한 게 아니라 마치 크루아상을 먹을 때처럼 여러 겹의 반죽을 한꺼번에 씹는 듯한 느낌이 든다. 들어간 토마토도 시큼하지 않다. 굳이 일정을 만들어서라도 또 오고 싶은 가게다. 

 즐겁게 식사하고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현수막을 봤다. 곧 새해라고 호랑이 그림이 걸려 있다. 위엄은 없고 귀여움만 남았다. 

 모리 미술관 '어나더 에너지' 전은 세계의 여성 미술가 16인의 전시회이다. 미술관은 모리타워 53층에 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검표 비슷한 걸 하기 때문에 깐깐하다 싶으면서도, 엘리베이터에 타서 버튼을 누르는 과정 또한 종업원이 해주기 때문에 대접받는 느낌도 든다.

 미술관은 원형 동선을 취하고 있는데, 각 공간이 넓어서 좁다는 느낌은 없다. 천장도 적당히 높아 큰 설치작품도 전시가 가능하다. 맨 첫 번째 사진의 작품이 그것인데, 규모가 대단해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위축된다. 

 작품은 알쏭달쏭하다. 작품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이 충분한 것도 있었지만, 설명이 없었다면 도대체 뭔가 싶은 것들도 많다. 왜 이런 소재이고, 재료이고, 연출인가. 작품의 배경,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설명은 일본어뿐이라 읽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설명이 있어야 비로소 작품이 온전한 하나로 거듭났다.  

 전시를 다 본 뒤 바로 아래층으로 가면 깨끗한 유리 너머로 도쿄를 조망할 수 있는데, 이날은 해당 층에 행사를 하고 있어서 본래 보던 전망의 일부만 볼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 나온 출구에서, 위에서 보지 못했던 도쿄 타워를 무려 석양을 배경으로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