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카무라 '미로' 전
2022.2.
미로 전시회를 보러 간 시부야. 어쩌다 보니 개장 시간보다 한참을 일찍 도착한 지라, 거리 구경도 할 겸 천천히 걸었다. 역을 나오니 일상복이라고 보기 힘든 옷을 입고 걸어가는 사람이 보인다. 놀라지 않으려 애쓰며 골목길로 걸어갔더니 퇴폐업소 비슷한 건물이 보인다. 곳곳의 그라피티는 가게가 열지 않아 썰렁한 골목길을 어딘지 기분 나쁘게 만든다. 그렇게 다시는 걷고 싶지 않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전시회장인 분카무라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시간이 남아 근처 공원에 들렀다.
분카무라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나베시마쇼토공원. 동네 놀이터 정도의 넓이의 공원에 굳이 들른 이유는 시부야구의 공공 화장실 프로젝트 중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웬 화장실인가 싶었는데, 홈페이지를 보니 화장실 또한 일본의 '대접(오모테나시)' 문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쿄의 시부야에 놀러 오는 내외국인들이 화장실에서도 대접받는 느낌이 들길 바랐나 보다.
새롭게 단장되는 공공화장실은 총 17개이며, 그중 2022년 내 개장(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예정 화장실은 5개이다. 참여 건축가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건축가 안도 다다오도 있다. 그중 나베시마쇼토공원의 화장실은 신 국립경기장을 담당한 건축가 '쿠마 켄고'가 담당했다.
그렇지만 막상 화장실을 마주했을 때는 실망이 컸다. 흡사 원시 촌락 같았다. 화장실 바깥에 두른 목재는 엉성하여 건물을 대충 덮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공공 화장실 프로젝트 홈페이지에서는 다양성을 고려한 다섯 동의 화장실을 자연 소재가 깔린 길로 한데 묶었다며 그 의도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양성을 고려했다는 건 좋지만, 전체적으로는 꿈보다 해몽이 좋다 싶다. 오히려 화장실이 있는 나베시마쇼토공원이 낡기는 했지만, 더 볼거리가 있다.
특이하게도 '미로' 전시는 Joan Miro를 '주안 미로'라 기재하고 있다. 호안 미로가 아닌가? 싶었는데, 미로가 스페인의 카탈루냐 출신이기 때문에 그 지방의 발음으로 읽으면 '주안 미로'가 된다고 한다. 한편 부제는 '일본을 꿈꾸며'라, 전시회에 가긴 하지만 괜한 일본 찬양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전시가 일본과 엮이는 건 중반부부터로, 자포니슴의 영향을 받아 회화에 글자를 넣기 시작했다거나, 서예 및 도자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그나마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식사는 비오디나미코라는 파스타 가게에서 했다. 점심은 치킨과 파스타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 가지 메뉴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주문한 건 샐러드와 빵, 파스타가 나오는 C 세트(1320엔)다.
샐러드를 보니 당근이 있다. 일본에 와서 들른 다른 가게에서도 샐러드에 당근이 종종 들어갔는데, 이런 사소한 점에서 우리나라가 일본과는 다르단 걸 느낀다. (아니면 단순히 여태까지 우리나라에서 다닌 가게들이 샐러드에 당근을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파스타는 면이 굵으면서 쫄깃함이 느껴진다. 감자를 넣어 진득한 식감이 드는데, 우리나라에서 접했던 감자는 크게 썰어 덩어리로 내는 식이라 이런 되직한 느낌의 조리법이 낯설게 느껴졌다.
식사 후에는 근처에 있는 미야시타 공원에 들렀다. 미야시타 공원은 '공원'이기는 하지만 공원으로서의 정체성은 총 4층 중 옥상인 4층에만 있으며 나머지 층은 상점이 들어서 있다. 철도 선을 따라 남북으로 뻗은 공원이라 옥상에 가면 광활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상당히 넓다. 잔디밭도 있고, 운동시설도 있다. 잘 나가는 공간에 언제나 있는 스타벅스도 역시나 있는데, 도대체가 스타벅스는 왜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옥상은 공원 양쪽으로 펼쳐지는 도시 경관 외에는 구경거리가 마땅치 않다. 단지 시부야에 있는 공원일 뿐, 햇살 좋은 날 철망으로 된 의자에 앉아 바깥 공기를 쐬는 것 외엔 할 게 없다. 그마저도 날씨가 궂으면 소용없지만, 다행히 상점가 또한 바깥으로 난 통로에 개성적인 의자를 비치해 놓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음에 들른 곳은 도큐플라자 6층에 있는 교토 우지 후지이메이엔이다. 메이엔은 茗縁이라는 한자를 쓰는데, 그 중 茗라는 한자는 차나무를 가리키고, 縁은 인연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두 한자의 조합은 사전을 찾아봐도 안 나오는 걸 보면 같은 발음인 茗園(다원)의 의미를 넣으면서도 인연이란 의미도 더하고 싶었나 싶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디저트 중 하나가 이 몽블랑인데, 그중 사진처럼 기계에서 갓 짜내서 만든 몽블랑이 이상하게 자주 보인다. 자주 보이면 먹고 싶은 법. 유혹을 이겨내기보다는 그냥 순응하기로 했다. 가격은 단품 1738엔, 우지차와 세트로 주문하면 2178엔이다.
받아든 몽블랑은 기막히게 예뻤다. 그렇지만 막상 먹어보니 화과자를 실로 뽑아낸 식감이다. 팥을 갈아낸 것만큼은 아니지만 부드럽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메뉴판에는 비단실과 같은 식감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맛있지도 않다. 안쪽엔 싸 보이는 식빵에다가 말차 아이스크림,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가 있었다. 그중 아이스크림은 도대체 어떻게 보관했는지 얼음이 씹힌다. 크림을 위에서 짜내어 만들어내는 몽블랑은 죄다 이런 식인가 싶다.
몽블랑만 먹고는 절대 가게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같이 주문한 차 '카리가네', 즉 줄기차는 몽블랑과 달리 마음에 쏙 들었다. 대체로 상쾌하며 떫은맛이 없다. 대신 녹차 맛도 살짝만 난다.
찻집을 나와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가니 천장이 높아 개방적인 느낌이 든다. 마치 물고기 같은 장식물도 예쁘다. 그렇지만 도큐플라자 전체적으로는 어딘가 엉성한 느낌이 있어 다시 가기에는 망설여진다.
저녁도 시부야에서 해결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식사할 곳이 마땅찮아 아침에 비롱에서 산 잠봉뵈르(매장에서의 명칭은 잠봉 드 퀴 뵈르(jambon de cuit beurre), 즉 구운 햄과 버터이다)를 먹었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종일 돌아다녔음에도 버터가 녹은 흔적은 없었다. 가격은 800엔 정도 하는 것 치고는 바게트의 구수함, 버터의 고소함, 햄의 짠 감칠맛 중 어느 것도 안 느껴진다. 거기다 이날은 갓 만든 빵을 산 것도 아닌데 빵을 밀봉해 넣어주지도 않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금결제만 가능한 것도 여전히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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