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거나 씁쓸하거나
작성일
2022. 8. 7. 23:03
작성자
달콤 씁쓸

첫눈에 반한다는 것, 카구라자카

2022.2.


 인쇄박물관에 가려고 이이다바시 역에 내리니 쭉 뻗은 철로와 그와 나란한 하천이 시원스럽다. 카구라자카로 가려고 교차로로 가니 옥외광고판에 유달리 청색 조가 많다. 겨울의 맑은 하늘과 함께하여 마치 다른 세상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교차로를 건너 나지막한 경사를 오르니 음악이 흐른다. 도로 폭이 좁아 한눈에 들어오는 거리 양옆으로는 식당을 포함하여 식료품점이나 차 가게도 있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만들어진 아름다움이 아니라 마음에 든다. 과일가게를 둘러보니 도쿄에서 수확한 딸기도 팔고 있다. 더 올라가니 선국사(젠코쿠지;善國寺)라는 곳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호랑이의 해와 관련이 있다는 듯하다.  

 식사하러 라 로챠(La roccia, 이탈리아어로 '바위'라는 뜻)에 갔다. 가게는 2층에 있는데, 종업원이 문을 열어 예약했냐고 묻는다. 보통 평일 낮, 그것도 개장 직후에 들어가면 수월히 식사할 수 있는데 예약 여부를 묻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예약을 하는 게 좋아 보인다. 주문은 평일 한정 런치(수프, 파스타, 빵, 식후 음료)로 했다. 가격은 1000엔.

 포카치아는 쫄깃한 식감에 양파 맛이 스친다. 

 수프는 단호박과 양파, 당근을 넣어 끓여냈다. 

 파스타에는 부드러운 맛의 토마토소스를 기반으로 표고버섯과 생선 살이 들어갔다. 치즈도 들어가 있지만 거의 존재감이 없다. 면은 바릴라의 것처럼 매끈하다. 먹으려고 보니 포크 끝이 살짝 깨져 있어 아쉽다.  

 후식으로 차를 고르면 다즐링과 얼그레이 중 선택할 수 있다. 차는 티백에 우려서 나오지만 티포트에 담아 나온다. 가게에 들어설 때부터 식사를 마칠 때까지의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접객이 마음에 든다. 

 나라마다 유달리 사랑받고 유행하는 디저트가 있는데, 일본은 그중의 하나가 파르페다. 점심을 먹은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아틀리에 코타라는 파르페 가게가 있어 가 보았다. 물론 파르페만 팔진 않고 다른 즉석 디저트나, 포장 전용이지만 케이크도 판매한다.

 내부는 작업대 및 주방과 마주 보는 일자형 좌석뿐이다. 곳곳엔 가림막이 있었으며, 의자는 푹신했지만, 등받이가 낮고 또 높아 편안하지는 않았다. 

 뭐든 맛있어 보여 고민되었지만, '한정'이라는 단어 때문에 카구라자카점 한정 초콜릿 파르페(1590엔)를 주문했다. 부산스럽지 않게, 그렇지만 재빠른 손놀림으로 하나하나 올라가는 파르페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완성된 뒤엔 위에서부터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설명해주시는데, 속사포라 반 정도밖에 못 알아들었다. 설명 와중에 사진 왼쪽 위에 보이는 롤 모양의 초콜릿이 조금 떨어졌는데, 종업원으로부터는 딱히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파르페는 초콜릿의 갈색으로 가득하여 보기만 해도 질리도록 달아 보이지만, 기조가 되는 위의 초콜릿 무스가 진한 다크 초콜릿 맛인데다가, 중간중간 유자나 바닐라 아이스크림, 커피 소르베(샤베트) 등이 있어 맛에 변화가 있다. 하지만 입에 맞지 않더라도 눈이 즐거운 거로 목적은 다 했다 싶다.  

 잘 먹었으니 이제 인쇄박물관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아카기 신사가 있었는데, 건물이 비교적 최근의 것이다. 신사도 절도 옛것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가끔 이렇게 깔끔한 건물을 보면 낯설기만 하다.  

 인쇄박물관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1층 갤러리와 입장료가 필요한 지하 상설전시실로 구성돼있다. 상설전시실은 세계사 속 인쇄의 역사와 인쇄 기술에 관해 설명하고 있으며, 인쇄 기술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 체험 시설도 꽤 있었으나 역시나 코로나 때문에 만질 수는 없었다. 

 전시장 안에는 인쇄공방도 있는데,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공방 견학 및 활판인쇄 체험 때만 출입할 수 있다. 활판인쇄 체험의 경우 추가 요금 없이 카드 등을 만들 수 있어 더욱 좋다.

 활판인쇄 체험은 앞에 늘어선 낯선 기구들 때문에 언뜻 보기에 어려워 보이지만 조작이 어렵지 않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이날은 카드를 만들었는데, 다 만든 카드를 가져갈 수 있도록 봉투도 준비해주는 섬세함도 있다.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아 상설전을 번갯불에 콩 튀기듯이 본 후 1층 갤러리를 둘러봤다. 당시 '세계의 책 디자인 2020-21'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구성상 서양의 책을 기준으로 동양의 책도 찔끔 소개한 느낌이라 보는 입장에서 썩 즐거운 전시는 아니었다.  

 밤이 내려도 아름다운 동네다. 이번이 처음 온 거지만 두고두고 사랑하고 싶은 동네다.